2013년 3월에 조그만 정원이 있는 오래된 1층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책과 정원이 있는 북스테이 개념의 공간이었고 이름은 '달'이라고 지었다. 공간의 컨셉은 조용히 머물며 사색을 하다 가는 곳이었다.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밤 10시 이후에는 잠자리에 들 것, 술 마시려는 손님 금지(꼭 필요한 경우 인당 맥주 한 두 캔 허용), 큰 소리로 떠드는 손님 금지, 떠들썩한 파티 금지, 바베큐는 물론 고기 굽기 금지, 서로 배려하지 않거나 예의 없는 손님 금지 등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업을 안 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의가 없다거나 배려를 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느낌으로 판단했다. 예를 들면 밤 10시 넘어 예약 문의를 하며 다짜고짜 "방있나요?"라고 물어오면 망설이지 않고 "만실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하지만...."라는 말 한 마디를 안 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성향의 사람인 것이고 그런 사람을 내가 정성껏 가꾼 공간에 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게스트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6년 정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만실입니다."였지 싶다. 실제로 만실인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나는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믿었다. 특히 사람 보는 눈은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지원자들을 만나며 그들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여겼다. 체크인 할 때 게스트의 표정, 행동, 말, 느낌 이런 것으로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했다. 판단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이전 직업병 탓인지 특정 정보가 입력되면 해석을 해서 결론을 내리는 강한 알고리즘이 작동했다. 간혹 불쾌한 느낌의 사람도 있었다. 느낌이라기보다는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내가 정성껏 꾸민 게스트하우스 공간에 맞지 않는 사람이란 확신이 들 때가 있다. 몇 마디 이야기 나눌 때의 태도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느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다만 나는 사람을 판단했던 과거의 직업 때문인지 더 확신이 들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믿는 유치한 오만함이 산산조각 난 결정적 계기는 게스트하우스 경험 때문이다. 머무는 내내 불쾌하고 찜찜한 느낌이 들었던 손님이었는데, 체크아웃하며 정말 감동적인 짧은 글을 남기고 간 적이 간혹 있었다. 그런 일은 막장 드라마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보다 훨씬 큰 반전이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하나 둘 쌓이자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은 믿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경계해도 사람을 만날 때 본능적으로 어떤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그 느낌을 확장해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하지 않는 것, 특정 느낌이 강하게 들어도 확신의 늪으로 매몰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건 나를 위한 일, 당사자를 위한 일, 그리고 다른 게스트를 위한 일이다.
타인에 대한 판단은 자신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타인에 대한 생각이 사실이 아닐 수 있듯, 나에 대한 생각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타인의 생각이든 나의 생각이든 데이터가 담긴 숱한 정보든 단정적, 고정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자기개발서에서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많이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전제가 없는 자기 확신은 어리석음으로 가는 지름길 같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그 선택에 자기 확신이 있고 없고는 그닥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앞으로 나가는 건 확신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다. 자기 확신과 선택을 등치시키는 습관을 버리면 좋겠다. 특히 글을 쓸 때, 확신이 생기는 완벽한 글을 쓰려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