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사유

by 피라



2002년 6월 4일은 한국이 월드컵에서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첫 승을 한 날이다. 그때 난 광화문 인근에 있었다. 아웃 소싱을 위한 전사 직무 분석 타스크에서 일할 때였는데, 동료와 직무분석 기법을 배우기 위해 서울 출장중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옷집에 들러 빨간 티셔츠를 사서 갈아입고 광화문 거리 인파 속에서 경기를 보았다. 그때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한 장면이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반쯤 미친 상태였다. 평소에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분위기에 도취되어 일제시대 독립군이 조국 해방의 기쁨을 표출하듯 군중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다. 애국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나였지만, 그날은 군중과 함께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 한 복판에 인파만 가득한 풍경을 보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다. 차로 한가운데를 걷다 보니 동대문이었다.




20년 전이다. 월드컵이 열린 이듬해 봄에 나는 퇴직했다. 생각해 보니 나의 퇴직과 월드컵은 관계가 있는 듯 하다. 그때 거리에서 맛보았던 <자유+해방=희열+행복>의 느낌은 너무나 강렬했다. 막연했지만 사람이 때때로 이런 느낌으로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니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모든 일에는 나름의 해야 할 이유가 있다. 각각의 이유는 나의 이유가 아니라 그들의 이유였다. 그들이란 경영자들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도 사실 일의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성장, 이윤, 자부심 같은 것이었고, 그런 목표가 세상과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세계 1등 기업이라는 목표는 일단 전교 1등을 하고 싶다는 자의식 강한 공부 잘하는 학생의 마음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이 시시했다.




기업 내에 행해지는 모든 일을 행동 단위와 의미 단위로 쪼개어 분석해보니 일은 더 시시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 없이 그냥 <일>이라고 불리는 그 일들을 외과 의사처럼 해부해서 가능한한 잘게 해체해서 들여다 보니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미 단위도 의미 없었고, 행동 단위도 의미 없었다. 해체된 모든 일들은 피라미드 꼭지점처럼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 최종 목표에는 공허함뿐이었다. 그건 마치 물질계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원자의 구조가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텅빈 공간이 다라는 사실과 비슷했다. 원자핵과 전자의 실체가 궁금했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건 내가 일하는 이유, 내가 사는 이유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나의 일에서도 타인의 일에서도 일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일단 대학가서 생각하자, 일단 전교 일등해서 생각하자는 태도 같은 무의미한 맹목적 이유와 월드컵 첫 승의 환희가 뒤섞이자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퇴직을 하면 퇴직발령 코드가 입력된다. 자영업, 진학, 건강, 업무부적응, 결혼, 개인사유 등의 퇴직 사유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수백명과 했던 퇴직 면담의 업무적 목적도 퇴직 사유를 입력하기 위함이다. 퇴직 면담을 하면 솔직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좋은 것이 좋다고 하나마나한 말을 한다. 마치 면접을 보듯 그런 말, 표정, 행동 속에 담긴 진짜 이유를 찾아내고 싶다. 퇴직 코드로 입력하는 내용은 퇴직자가 글, 혹은 말로 직접 전한 퇴직 사유다. 하지만 말 못하는, 말하지 않는 진짜 퇴직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난 퇴직 전에 퇴직의 이유를 정리하고 싶었다. 생각을 하고 글로 정리를 하다 보니 책으로 내고 싶었다. 노트북을 사서 본격적으로 정리했다. 퇴직 전후에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책을 쓰고 있다.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 원고가 완성이나 될 지도 모르겠다. 몇 해 동안 손을 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지는 3년이 되었다. 계속 스케치를 해왔다. 주제와 내용도 많이 바뀌었다. 퇴직의 이유에서 일의 이유로 바뀌었다. 일이 무엇인지, 왜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일과 삶의 연결이 주제다. 나 스스로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곱씹어봐야 한다. 그래서 20년이 지나버린 것 같다. 대가의 초상화처럼 머리 속으로는 상상하는 멋진 그림을 막상 그리면 5살 아이가 그린 허수아비같은 사람의 형상이 된다. 하지만 계속 그린다. 목표도 내용도 사라지고 그리는 행위만 남은 것 같다. 계속 행위에만 집중하니 최근 작업에 진척이 좀 있다. 어제는 좀 많이 썼다. 모두 설사 같은 글이지만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 작업 방식을 바꾸었다. 어떤 날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어떤 날은 많이 쓰기도 한다가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조건 일정 분량을 쓴다로 원칙을 정했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배운다. 일단 쓰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나아진다 믿는다.




요즘 매일 저녁 맥주를 한 잔 한다. 술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다. 어제 한 잔 하면 오늘 한 잔 하고 싶다. 어제 한 잔 하지 않으면 오늘 마시고 싶은 생각이 옅어진다. 습관은 그렇게 형성된다. 삶이란 습관이다. 어제 많이 썼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오늘 쓰면 내일도 쓰고 싶어질 것이다. 무엇이든 이와 비슷하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 지 모른다. 생각만 한 탓, 생각을 너무 많이 한 탓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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