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줄이기

왜 일인가?

by 피라

사전을 찾아보면 진로의 뜻은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진로라는 말을 들으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서사 중 하나인 오디세이가 떠오른다. 오디세이는 다양한 경험, 온갖 역경을 겪으며 앞으로 나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정처 없이 떠돌며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고향 집이라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은유 같다. 오디세이에서 말하는 그토록 그리운 집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을 말하는 것 같다. 고향 집은 내면에 숨겨진 진정한 자아의 상징 아닐까?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답게 살아야 하는 게 삶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진로, 취업, 직업, 일이라는 주제로 컨설팅했다. 컨설팅이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행위다. 만난 이들 대부분은 대학생들이었다. 진로와 취업을 고민하는 대학생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차곡차곡 데이터가 쌓였다. 데이터의 교집합에는 똑같은 고민이 있었다. '나답게 살고 싶다. 하지만 직업적 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였다. 고민을 대하는 태도 측면에서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야.'라는 태도다. 분명 내 삶이지만, 진로에 관해서는 가족, 친구와 같은 주변 사람이나, 파편화된 그럴듯한 말과 정보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다. 나름 자신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 삶은 내가 원한 삶도 아니고, 타인이 원한 삶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여기까지 흘러왔다는 생각이다. 이런 태도는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나답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근육이 오래 동안 퇴화된 결과일지 모른다. 배움과 소신으로 이미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잘 걸어가고 있는 학생을 간혹 만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다. 대부분 나의 삶도 아니고, 타인의 삶도 아닌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삶에 익숙해져서 구체적 나다움 혹은 나다운 선택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다. 대부분 그런 어정쩡한 상태에서 진로를 고민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진로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고민의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나는 왜 야구선수가 되지 못했나?


나는 공 던지는 걸 좋아했다. 첫 시작은 기억나지 않는다. 커다란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던 난 7살 때부터 공을 던졌다. 벽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과녁을 맞히기 위해 공을 던졌다. 던지면 던질수록 점점 더 재미있었다. 정확도와 속도가 올라가니 거리를 늘렸고, 과녁의 크기를 줄였다. 진지한 열정이 보였는지 아버지가 글러브와 공을 사주셨다. 그 뒤부터는 더 열심히 더 자주 벽에 공을 던지고 튕겨 나오는 공을 받아냈다. 아무리 잘 던져도 벽에 맞은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흙과 돌로 된 땅 때문이다. 공은 단 한번도 똑같은 경로로 내게 오지 않았다. 목표를 향해 공을 던지고, 벽과 땅에 맞아 나오는 공을 다시 받으며 나도 모르게 투구 연습, 수비 연습을 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틈만 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을 던졌다. 아버지는 나무로 만든 야구 배트도 사주셨다. 나는 매일매일 낮이고 밤이고 공을 던지고, 몸을 날려 튕겨 나온 공을 받았고, 배트를 휘둘렀다. 10살이 되었을 때 학교 친구들과 야구를 시작했다. 나의 실력은 출중했다. 4년 동안 혼자서 맹연습을 한 탓이다. 내가 던지는 공이 가장 빨랐다. 정확도도 높았다. 나는 투수가 되었다. 그때부터 야구가 내 인생이 되었다. 집을 나오면 친구들과 야구 경기를 했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서 연습을 했다. 밤에도 공을 던지고 기둥에 단 폐타이어를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가족은 물론 먼 친척들도 내가 야구 선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야구 선수가 내 꿈이라도 믿었다. 야구처럼 내 인생을 사로잡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다니던 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82년에 프로야구가 생겼다. 그때쯤 나는 전교에서 가장 공을 빨리 던지는 투수가 되어 있었다. 다른 반들과 시합 할 때는 '정필이 던지기 없기'라는 규칙이 생길 정도였다. 나는 주로 다른 학교와 시합할 때 학교 대표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야구 시합을 하고 있는데, 나를 지켜보던 한 어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보고 야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냐며, 자기 학교로 전학을 와 야구부에 들어오라고 했다. 제대로 가르쳐 준다고 했다. 야구부가 있었던 대신초등학교의 코치 또는 감독으로 기억한다. 그 뒤로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토록 원하는 야구 선수가 될 수 있는데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사랑한다 생각했던 사람과 막상 결혼하려니, 망설여지는 마음 같은 것이었을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고, 야구부라는 미지의 삶이 두렵기도 했다. 단지 야구의 즐거움만 느끼고 싶은 것인지, 고생의 길로 들어서 진짜 야구를 하고 싶은 것이지 헷갈렸다. 무엇보다 변화 자체가 두려웠던 것 같다.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혼자 고민하다가 전학을 포기한 것 같다.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진로 고민이었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는 있지만, 야구를 사랑했던 12살 소년의 고민과 진로와 취업을 생각하는 대학생들의 고민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그건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이다. 야구를 정말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을 때, 야구가 직업이 된 미래에 생길 좋거나 나쁜 변화들을 모른다는 불안함이 불확실성의 정체다. 선택의 그 결과가 정확히 무엇일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결국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다. 나의 경우, 정확히 말하면 야구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때문에 선택 자체를 피한 것이다. 대학생들은 때가 되면 억지로 밀려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정말 원해서 한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 이전이나 선택 이후나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 일의 이유와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일단 어정쩡하게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목표로 삼았다가 점점 목표를 낮춰가며 자괴감과 무기력 속으로 빠져든다. 정도의 차이일뿐 모두 비슷하다. 선택에 따라 노력하는 시늉을 하지만 내 삶도 아니고 남의 삶도 아닌 상태의 삶은 그대로다.


어릴 적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 지 잘 알고, 선택의 상황에서 단호하게 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야구 선수 생활을 조금 하다 그만두었더라도 내 삶은 훨씬 행동 중심으로 바뀌었을 것 같다. 어릴 적에 함께 야구하던 친구 몇 명은 야구 선수가 되었고, 몸이 상해 전전대다, 미용실 보조, 주유소 직원 등이 된 것을 보며 어릴 적 내 결정이 현명했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선택의 상황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그게 나답게 사는 길, 최선을 다하는 길, 후회를 줄이는 길이다. 불확실한 상황이나 조건을 우선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선택이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다음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선택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 배움이고 삶이다. 솔직한 자신의 욕망과 본질적 가치로 만들어진 기준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선택의 상황에서도 명쾌하게 판단하며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런 힘을 길러주는 일이 교육의 역할이다. 교육은 직업으로 통하고, 모든 직업은 일을 한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진정성 두 가지가 필요하다. 기술은 실질적 기술과 형식적 기술이 있다. 학벌과 시험 같은 자격이나 조건은 형식적 기술에 머물 뿐이다. 형식적 기술은 일 잘하는 것, 즉 실질적 직무 역량과 상관없다. 기술을 잘 다루며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힘인 진정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중요하다. 진정성이란 나다움의 다른 말이다. 교육이 개성어린 진정성과 자기다움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나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가지는가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게 삶의 리스크를 줄이는 일이다.


리스크를 줄이는 일의 본질


리스크란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은 두 가지가 있다. 내적 불확실성과 외적 불확실성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살까 말까 고민할 때, 향후 집값의 향방과 이자율의 변동 같은 것은 외적 불확실성이다. 원하던 집을 드디어 샀는데, 막상 살아보니 만족도가 떨어져 괜히 샀다고 후회하는 건 내적 불확실성이다. 내적 불확실성은 수시로 변하는 생각과 마음에 관한 문제고, 외적 불확실성은 나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 변수다. 내적 불확실성의 진원지는 나 자신이고 외적 불확실성의 진원지는 세상이다. 내적 불확실성과 외적 불확실성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상호작용하며 서로 영향을 미친다. 삶이란 나와 세상이라는 두 불확실성의 연결 과정이다. 나와 세상이 잘 연결되면 좋은 삶이고, 잘 연결되지 않으면 힘든 삶이다. 입사 지원이란 나와 기업, 나와 직무를 연결지어 나를 말하는 과정이다. 직업이란 나와 세상이 일로 연결된 상태다. 직업, 취업, 일의 관점에서 바라본 삶에서 불확실성이라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좋은 방법은 내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라는 나의 내면을 잘 관리하는 건 무척 어렵지만, 외적 변수인 세상 전체를 관리하는 것보다는 간단하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리스크를 줄이고 싶다. 하지만 삶도 투자와 마찬가지로 리스크가 적을 수록 돌아오는 것도 줄어든다. 리스크를 줄이는 결정은 인간의 본능이겠지만, 나은 삶을 위해서는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리스크를 안는다는 건 관리한다는 뜻이다. 진로 선택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비결은 먼저 나답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나다움이란 생각의 기준이다. 나다운 삶은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가 가장 적다.


직업이란 나와 세상이 일로 연결된 상태다. 일로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진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번째 나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둘째 세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은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안다는 뜻이고, 세상에 대해 안다는 것은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안다는 뜻이다. 나와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배우는 과정이 공부다. 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 중 일치하는 것을 찾아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지속적 행위가 바로 일이다. 일이 무엇인지, 일의 이유를 알게 되면 나의 가치와 세상을 가치를 발견하고 구체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나와 세상을 잘 연결지어주는 나만의 일을 찾아내는 힘을 얻게 된다. 일의 본질을 알게 되면 삶의 리스크는 줄어들고 기회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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