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목적

왜 일인가?

by 피라
공부, 일의 바다로 향하는 물줄기


다수가 생각하는 공부의 목적은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목표는 좀 더 공부 잘하는 중학생이 되는 것이고, 중학생의 목표는 좀 더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생의 목표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가서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 공부의 문제는 취업의 문제로 바뀐다. 졸업 후 조금이라도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공부의 최종 목적이다.


유치원 아이부터 정년 퇴직자까지 진로 선택지는 진학, 취업, 창업 세가지 뿐이다. 진학은 취업과 창업을 잠시 미루는 선택이고, 창업하려는 사람도 경험을 쌓기 위해 취업한다. 절대 다수가 도착하는 공부의 종착역은 취업이다. 창업과 취업의 공통점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다. 초중고, 대학생의 필연적 미래는 일하는 사람이다. 건물주도 상가와 건물을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타인에게 완전히 맡기더라도 일을 맡긴 사람을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일은 인간의 숙명이다. 공부를 해서 위로 위로 올라가면 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에는 <천왕봉 해발 1915m>라는 글자 대신 <어서 오세요. 이제부터 일을 하셔야죠?>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때부터 일을 하기 위해 공부로부터 하산해야 한다.


인간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교육의 목적인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은 직업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윤택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은 있어야 한다. 몸을 뉘어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과 하루 한 끼의 식사가 최소한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강남의 평범한 아파트에 살며 통장 잔고에 신경 쓰지 않고 쇼핑과 외식을 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현실에서 용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이 생겨나고 유지된다. 인간적 모멸감을 견디며 최저임금을 받아도 버티며 출근하는 사람도 있고, 억대 월급을 받아도 인센티브가 자신 기준보다 작아 뉴스 클릭하듯 쉽게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진로란 일과 연결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에 대한 여러 대답이다. 진로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질문은 하나지만 수만가지 대답이 있고, 한 대답을 선택하면 나머지 대답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채용 인터뷰에서 최악의 대답은 침묵이다. 침묵의 원인은 최고의 대답을 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면접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핵심이지 질문에 대한 정답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다. 삶의 질문에 정답이 없듯 면접 질문의 정답도 없다. 그런 점에서 삶과 면접은 닯았다. 면접이란 자신의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다. 삶도 세상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이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주고받을 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 진로 고민이다. 그런 점에서 진로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 이후의 상호작용에 대한 문제다.


진로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삶의 문제는 곧 진로의 문제고, 진로의 문제는 일의 문제다. 초등학생부터 요양원 노인까지 진로를 고민한다. 모든 사람은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며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진로 문제를 푸는 방법은 선택과 행동이다. 진로 문제가 쉬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을 열고 세상과 대화하기보다 최선의 이기적 선택을 먼저 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은 대체로 타인에 의해 주입된 욕심이다. 나의 욕망이 아닌데, 나의 욕망이라 착각하는 수많은 대답 속에서 길을 잃은 상황이 진로 문제의 본질이다.


삶의 문제는 일의 문제


일의 이유에 대한 진실한 질문과 대답은 자신만의 진로를 찾아가는 비결이다. 대답이 어렵고, 대답의 내용이 자꾸 바뀐다고 해서 질문을 멈추면 안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구체화된다. 일이란 삶을 이루는 분자와 같다. "요즘 무슨 일 있니?"라는 질문에서 뜻하는 일이란 일상의 바탕 화면과 같은 삶 자체를 의미한다. "요즘 무슨 일하는데?"라는 질문에서 뜻하는 일은 직업을 말한다. 일이란 삶 자체이기도 하고 직업 행위이기도 하다.


일정한 돈을 버는 행위가 지속되면 직업이라 부른다. 직업은 일이라는 단위 행동들로 구성된다. 이미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의사라는 직업의 상태가 아니라, 의사의 구체적인 일을 하며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느껴야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의 없음이 아니라, 잘못된 일이다. 잘못된 일은 두 가지가 있다. 애초에 잘못된 일과 잘못 진행하는 일이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인간은 일을 한다. 돈을 받는 일이든 돈을 받지 않는 일이든 인간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일은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괴로워하고, 어떤 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절망에 빠진다. 일을 가진 이는 일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일이 없는 이는 일을 가지려 삶을 바친다. 어떤 이는 일로 인생의 자부심을 느끼고, 어떤 이는 일로 인해 자괴감을 느낀다. 어떤 이에게 일은 살아가는 이유고, 어떤 이에게 일은 죽고 싶은 이유가 된다. 어떤 일을 하든 일 때문에 삶은 미궁에 빠진다. 삶은 온갖 일로 이루어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미궁이다.


공부의 목적은 공부를 잘하는 상태도, 대학도, 취업의 성공도 아니다. 삶의 진짜 문제는 취업의 어려움이 아니라, 취업 후에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공부의 목적은 직업의 구하는 행위와 취업 성공을 뜻하는 입직이 아니라, 입직 이후의 삶이다. 일의 이유와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공부의 목적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일의 이유와 목적, 가치와 의미를 일이라는 과정적 행위와 잘 연결짓는 걸 말한다. 공부하는 학생 99%의 운명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삶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점점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확율이 높다는 의미다. 일에 문제가 반복해서 생기면 아무리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가져도 자꾸만 방황하는 삶을 살고 불행한 삶을 살 확율이 높아진다. 일에 대해 알고 일을 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건 학생이나 취업준비생뿐 아니라,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운명을 빚어내는 건 일이다. 자동차를 탄 상태가 삶이라면 일은 운전이다.



우리는 일을 모른다


좋은 직업이 무엇인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두 가지 공통점은 있을 것 같다. 경제적 기반인 '높은 임금"과 직업적 보람인 '가치 실현'이다. 학생들은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일단 공부를 하고, 일단 대학을 가고, 일단 취업 준비를 한다. 공부의 필연적 귀결은 일이다. 일하는 행위가 없는 직업은 없다. 특정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 직업을 통해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검사가 되고, 택배노동자가 되고, 대기업의 프로그래머가 되고, 공무원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어떻게 일할까는 어떻게 살까의 문제다.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좌절과 성취,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 때로는 일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한다. 어떻게 일할까의 문제는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직업을 가지기 전까지는 어떤 직업을 가질까의 문제가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직업을 가지고 난 뒤에는 어떻게 일할까?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한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일하는지>에 따라 직조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일할까?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과정이다. 공부의 끝자락에서 직업을 얻고 일을 통해 가치, 보람, 성취, 행복을 느끼는 삶을 저마다 원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과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일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데도 너무나 무지하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넘게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막상 일을 하게 되면, 일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배운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첫 난관은 취업 준비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인 직무 역량을 말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니 시작부터 막힌다. 그래서 취업 준비를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운이 좋아 원하는 곳에서 일하게 되면 본격적인 문제가 시작된다. 일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니, 시키는 일을 무조건 하는 상태가 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시키는 일을 실수없이 빨리 하는 능력이라는 망조가 들기 시작한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나 일을 하는 사람이나 시키는 일이 전부라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일의 기본 개념이 없는 건 신입사원이나 오랜 경력을 쌓은 부사장이나 똑같은 조직도 많다. 경험이 많다고 일을 잘 알고, 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일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마음 맞는 직장 동료끼리 진솔한 대화의 9할은 일의 기본도 모르고,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인간들, 그런 시스템에 대한 뒷담화다.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들은 일 좀 안다는 걸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들도 일할 줄 모른다는 사람 취급받는 건 다 아는 비밀이다.


일에 삶을 맡기지 말고, 일로 삶을 만들어야 한다


힘겹게 공부하며 살아온 삶의 결말이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면 슬픈 일이다. 일하기 위해 성적을 올리고, 스펙을 쌓으며 힘겨운 노력을 하지만 대부분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한다. 원하는 직업인이 되더라도 '고작 이따위 일을 이렇게 하려고 그렇게 공부했나?'라는 뒤늦은 각성이 밀려 온다. 신입 사원 때 어떤 동료, 어떤 사수, 어떤 상사, 어떤 오너를 만나느냐에 따라 일을 통한 운명이 갈린다. 일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현실 일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일시키는 사람의 말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가 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삶이 요동친다. 일을 가지려고 인생의 25%~ 30%의 삶을 공부하며 보내지만 정작 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일을 가지게 되면 일에 무방비로 영향받는 상태가 된다. 삶을 위해 일을 하지만, 일이 삶을 공격하는 상태가 된다. 대부분 그렇다.


직업인의 주요 변수는 일 자체와 일과 연관된 사람이다. 일과 사람이라는 우연한 두 변수에 의해 일로 인한 운명이 춤춘다. 일을 가지기 위해 삶을 바쳤지만, 어떤 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일을 그만 두기도 하고 참고 견디는 노예같은 직장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신입사원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고분고분하게 시키는 일만 하는 지원자가 아니다. 그 정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본 이해력과 실행력을 갖춘 사람은 도처에 널려 있다. 언제든 대체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자괴감이 바탕화면이다. 타인의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자신의 일로 삶을 일궈갈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같다.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의 전제는 일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그럴듯한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삶으로부터 우러나온 생각이다. 일에 대한 진정성 담긴 생각은 일과 삶을 연결하는 끈이다. 일의 이해와 일의 이유가 있어야 일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일에 삶을 맡기지 말고, 일로 삶을 만들어야 한다. 일은 삶의 문제이지만,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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