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인가?
나는 문지기였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문 지키는 일을 맡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입구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 회사 안으로 들일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일을 했다. 평소에는 출입문을 단단히 막고 있다가 괜찮은 사람이 보이면 문을 열어 회사 안으로 들였다. 그렇게 회사 안으로 들여보낸 사람은 한 해에 1,000명 전후였다.
내가 입사했을 때 회사의 이름은 LG LCD라 불렀다. 그해 여름에 회사 이름이 LG Philips LCD로 바뀌었다. 새로운 회사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큰 행사가 열렸다. 그때 유명한 가수 그룹이었던 H.O.T가 와서 축하 공연도 했었다. 그날 나는 문지기 일을 멈추고 H.O.T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처럼 몰려와 회사 바깥에 끝없이 서 있는 입장객들의 줄을 점검하며 행사장에 바깥 상황을 무전으로 전하는 일을 맡았다. 전무후무한 행사는 무사히 잘 끝났고, 몇 년 뒤 회사 이름은 LG 디스플레이로 바뀌었다.
회사 문지기였던 내가 일한 부서의 이름은 인재 개발팀이었다. 내가 입사한 1999년은 한국의 LCD 산업이 기지개를 펴던 때였다. 삼성과 LG가 서로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고 경쟁적으로 공장을 증설하며 인원을 엄청나게 늘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매년 1~2만 명의 지원자를 서류로 만났고, 2~3천 명을 면접 봤다. 회사에 들어오려고 몰려 온 사람들 중에서 회사에 들일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나는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했다.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보내온 그들의 정보가 담긴 서류를 먼저 검토했다. 처음에는 우편 접수를 받았다. 적게는 4장, 많게는 10장이 넘는 입사 서류를 검토하기 위해 종이를 넘기다 보면 손가락이 아린다. 손가락도 보호하고 서류도 잘 넘기기 위해서 골무를 끼고 서류 전형을 했다. 지원자들은 정말 다양했다. 기재된 내용도 물론이거니와 지원서에 담긴 마음도 제각각이었다. 인생을 바친 듯한 정성에 숙연해지는 지원서도 있고, 정성은커녕 우리를 농락하려는 듯한 무성의에 서류 봉투를 뜯자마자 불쾌해지는 지원서도 있었다.
문지기 업무의 시작은 지원자들이 보내온 서류를 보고 직접 만나볼 가치가 있는 사람과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다. 면접 대상자를 추려내는 일 말이다. 판단의 기준은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다. 기업이 사람을 뽑는 이유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고, 많은 지원자 중에 가장 일을 잘 할 것처럼 보이는 지원자는 언제나 합격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란 개념과 비슷하다. 간단한 것 같지만, 무척이나 복잡한 개념이다. 전공, 성적, 자격증, 활동 등의 객관적 정보가 담긴 스펙이나 자기 소개서같은 주관적 정보로 간단히 판단하기 힘든 일이다.
지원자 한 명 한 명이 수학 문제라고 치면, 그들이 제공한 그들 자신에 대한 여러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일을 잘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수학 문제처럼 정해진 답은 없다. 어떤 관점, 어떤 기준으로 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어렵다. 서류전형에서도 어렵고, 면접 전형에서도 어렵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뭐든 경험이 쌓이면 쉬워진다. 문지기 초짜였던 처음에는 입사서류를 아무리 봐도 합격으로 분류해야 할지, 불합격으로 분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면접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보 면접관 시절에는 면접이 끝난 뒤에도 합격·불합격 판단을 못해서 서류를 뒤적이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음 조 면접자들이 들어와 버려 당황한 적도 있었다.
뭐든 경험이 쌓이면 익숙해진다. 어리숙한 초보 문지기였던 나는 얼마 뒤 빠르게 문지기 업무를 수행했다. 마음만 먹으면 자소서 검토도 4초안에 끝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면접을 볼 때도 면접실에 들어오는 순간 일 잘할 것 같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판단할 수 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5명의 지원자가 한꺼번에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나, 자기소개가 끝날 무렵이면 대충 판단이 되었다. 나머지 면접 시간은 판단을 검증하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춤추는 세계에서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단한 속도로 결론을 도출하는 감각이 생긴 것이다. 채용 후 부서배치, 수습평가, 인사관리 등의 다른 HR 업무도 하면서 매년 2천 명 전후의 면접자들을 만나다 보니 문지기 일의 속도와 효율성은 점점 늘어났다. 채용의 핵심인 직무 역량을 갖춘 지원자를 판단하는 예민한 감각이 생긴 것이다.
삶의 리스크, 일
퇴직 후에는 문지기 일을 하면서 익힌 나의 감각을 팔아먹었다.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고 해석하며 사람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주로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강의, 모의 면접, 컨설팅했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한 달에 보름 남짓 일하고 천만 원 넘는 돈을 벌기도 했다. 나의 일은 취준생들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 즉 직무 역량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갖출 수 있으며, 갖춰진 직무 역량을 채용 과정에서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개개인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컨설팅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컨설팅받은 대부분 학생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다. 어떤 학생은 내 덕분에 개교 이래 처음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졸업생이 되었다며 감격하기도 했다. 채용 관점에서 개별 취준생들의 상태를 체크해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고, 면접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피드백하는 것은 내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서류전형을 하는 인사담당자로서, 최종 합격을 결정하는 면접관으로서 수천 명의 면접을 본 경험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도의적 책임 같은 것도 없으니 보안 시스템을 설계한 후 퇴직 후 그 보안 시스템을 뚫는 일보다 100배는 쉬운 일이었다. 서울대생부터 고등학교 재학생까지, 최저임금의 단순 제조업부터 개방직 고위공무원까지, 지난 20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에게 취업을 위한 직무 역량을 말해 왔다. 다양한 일의 세계에서 요구되는 직무 역량은 제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직무 역량, 가장 중요한 직무 역량이 있다. 그건 바로 진정성이다.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상대에게 말하는 것과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다른 일이다.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찬가지로 일을 잘할 수 있다 말하는 것과 실제로 일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스토킹 범죄자가 되기도 하듯 회사를 위해 시키는 일을 무엇이든 성실히 하겠다 말한 가식적 지원자 때문에 폐업 절차를 밟기도 한다. 개개인의 인생에서도 그렇듯, 기업도 사람이 리스크다. 오너 빼고 모두 리스크인 경우도 있고, 오너가 가장 큰 리스크인 경우도 있다. 리스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리스크를 잘 관리하면 기회로 만들 수 있다. 투자, 삶, 일에서 리스크는 관리하기에 따라 위기 혹은 기회가 된다. 기업이란 협업의 과정에서 사람이라는 리스크를 잘 관리해서 기회로 만들려는 집단이다. 그 첫 단추가 채용이다. 하지만 아무리 미래의 잠재된 기회가 많아 보여도 최소한의 리스크 관리를 할 가치도 없는 지원자들이 있다. 이런 부류의 지원자가 채용 단계에서 첫번째로 탈락된다. 어떤 영역이든 똑같다. 정상적 기업이라면 예외가 없다. 빛의 속도로 탈락되는 만고불변의 보편적 이유는 진실성의 부재다. 진실되지 않은 지원자는 가식성, 이중성, 불투명성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지원자들은 입사 후 여러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자신과 타인을 진실하게 대하는 마음, 일을 대하는 진실성은 직무 역량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취업 준비는 평소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글, 나의 행동에 진실을 담는 일이다. 지원자의 진정성은 뽑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지원하는 입장에서 가장 소홀히 여기는 요소다. 번지르르한 스펙과 가식적 연기에 가려 행방불명된 진정성을 찾는 것이 일과 삶을 위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이다.
삶이란 자신이라는 리스크를 지혜롭게 관리해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진정성은 인간의 삶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중요한 척도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숨쉬듯 거짓말하는 사람은 사생활과 비즈니스의 리스크다. 삶도 기업도 진정성이 없는 사람에 의해 무너진다. 신입 사원이든 경력 사원이든 채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원자의 진정성이다. 진정성만 갖추면 무조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진정성 없는 고스펙의 지원자보다 낮은 스펙이지만 진정성을 갖춘 지원자가 리스크관리 측면에서 훨씬 낫다는 뜻이다. 사람을 집에 비유하면 진정성이란 건축물의 기초와 같다. 진정성이 없다는 건 기초가 없거나, 기초가 불안한 집과 같다.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그런 불확실한 집을 살 사람은 없다. 진실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 역시 같은 태도로 대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일을 진정성 담긴 태도로 대한다. 삶에 진정성이 담기면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이 의미 있다. 의미 있는 과정은 좋은 결과를 만드는 보증 수표다.
나와 타인의 리스크를 줄이는 진정성은 마음 먹는다고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은 삶과 일의 이유와 가치를 지치지 않고 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공부의 이유를 모른 체 일단 공부를 하고, 대학의 가치를 묻지 않고 일단 대학을 다니고, 일의 이유를 찾지 않고 일단 일하려는 태도가 삶의 리스크를 키운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 일의 이유, 목적, 가치보다 일의 이익, 평판, 영향력을 먼저 묻는데 익숙하다면 그 삶은 이미 위험 지대로 들어선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문제가 생기고, 내게 맞는 일을 구하지 못하며, 하는 일마다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반복되는 건 위험 신호다. 일 없는 삶은 먹지 않는 삶, 숨 쉬지 않는 삶과 같다. 일이 무엇인지, 일의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 삶이 리스크다. 만약 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살고 있다면 그런 삶이 결정적 리스크다. 내 삶의 리스크는 그런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