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애호가인 커티스 베이커(Cutis Baker)는 날마다 오래된 차를 고친다. 내가 찾아갔을 때도 베이커는 창고에서 1995년형 포르쉐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를 수리하고 있었다.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서 이 차를 발견한 그는 텍사스주 댈러스로 날아가 그 차를 몰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있는 집까지 돌아왔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연장을 사용하고 용접을 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는 이는 베이커가 유일했다. 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중고차 거래상의 헛소리에 자주 속는 이유를 묻고자 한다면 베이커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판매자의 직접적인 헛소리에 속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그보다 판매자가 알려주지 않는 사실에 속는 거죠. 매수자가 차를 꺼리게 만들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사실 팔 마음이 없는 사람뿐이겠죠."
베이커는 구매자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걸 판매자에게 증명한다면 판매자가 헛소리할 여지는 상당히 줄어든다고 말한다.
판매자한테서 "그렇게까지 까탈스럽게 굴건 없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엄청 거래를 잘한 것이라고 베이커는 말한다.
"단 한 대의 차, 한 채의 집, 하나의 일에만 빠지면 호구가 되기 십상이죠. 왜냐고요? 하나의 선택지에 홀딱 반하면 한 사람의 딜러가 제시하는 거래 조건에 따르는 수밖에 없거든요. 판매자 쪽에서 제시한 조건을 전부 수락해야 한다는 뜻이죠"
- John V. Petrocelli, SKEPTIC 28 -
대통령이 코딩 교육에 빠진 것 같다. 초등학교 5세 입학도 사실은 아이들에게 빨리 코딩 교육을 시키려는 뜻이었다 한다. 교육부 장관도 과학기술 전공자가 필요하다 했단다. 코딩 교육도 좋고, 기술 교육도 좋고, 과학자 출신 교육부 장관도 좋다. 하지만 조금 걱정스럽다. 기술만 배우면 고용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에 홀딱 반한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비트가 몸에 좋다고 말하니, 다른 건 먹지 않고 비트만 먹으려고 하는 상황 같다. 밥은 먹지 않고 삼시 세끼 비트만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한 가지는 안다. 대변을 볼때마다 변기물이 붉게 변한다. 물을 내리면 빨간물은 정화조로 흘러 들어갔다가 하수도를 지나 하수처리 장치로 흘러들어간다. 모두가 비트를 밥처럼 먹는다면 하수종말처리장의 물은 온통 빨간색일 것이다. 고도처리를 하면 원래의 물 색깔을 되찾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강물은 분홍빛으로 변하고 바다도 은은한 분홍빛이 될 지 모른다. 구름도 분홍색이고, 분홍빛 비가 내릴 지 모른다. 아이들은 물은 분홍색이라고 배울지도 모른다.
엉터리 상상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치앙마이에서 머물 때 혈변을 누고, 급히 귀국하려고 했던 해프닝을 생각하면 작은 오해를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다행히 인과관계를 알고 귀국을 하지 않았지만 비트를 먹으면 변기물이 빨갛게 물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트와 혈변의 관계처럼 코딩 교육을 받으면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는 걸 발견하고는 유레카를 외쳤을지 모른다. 내가 알기론 코딩에서 중요한 것은 코딩을 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아니다. 코딩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코딩을 잘 할 수 있는 기획 능력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문제를 참신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영어가 유창하다고 해서 일과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유창한 영어 능력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모른다면 잘되야 통번역사 정도다. 기술 교육보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통찰과 지혜를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AI가 코딩을 하는 시대에 기술 중심의 교육이 얼마나 학생 개개인의 미래에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다. 일자리 하나 얻겠다고 삶을 바쳐 누군가의 도구가 되기 위한 기술 교육에 몰빵하는 사람보다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인문학이 교육의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다. 코딩 교육은 목적이 아니다. 특히 교육 대상자의 연령이 낮아질수록 코딩 교육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코딩 교육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고 복잡한 네트워크와 그 속에 숨어 있는 가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렴풋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교육부 장관의 전공이 무엇인지는 참고 사항일 뿐이지, 교육부장관 역량의 본질이 아니다. 어떤 교육적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현실적 목표를 가지고 어떤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지로 판단할 일이다. 구멍 가게 같은 기업도 지원자의 전공, 지식과 스킬만 보고 뽑고 난 뒤 땅을 치고 후회한다. 일을 잘하는 역량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역량은 지속적이지도 않고, 사계절처럼 계속 변한다. 물론 당연히 그렇게 잘 인사를 하겠지만, 스펙과 조건 위주로 인선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빨간색과 파란색 사이를 무한반복하는 시계추처럼, 외줄 위에서 길을 찾는 인생처럼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가기만 반복하지 말고, 이제 그만 땅으로 내려왔으면 좋겠다. 숨쉬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는 땅과 바다라는 걸 깨닫고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그런 교육을 하면 좋겠다. 알고리즘을 이해하는 코딩 교육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이 공존하는 교육을 하면 좋겠다. 가장 이상적인 바람과 가장 현실적 요구가 얼싸안고 포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타고난 생명을 헤치지 않고 삶을 누릴 수 있다 본다. 성적, 대학, 취업은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과정을 목적이라 착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2006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SL500이 근사하게 보여 홀딱 빠지면 4000달러나 들여 유압식 서스펜션을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엔 관심조차 없을지 모른다. 교육을 통해 저마다 자동차를 갖게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동차를 어떻게 쓸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왜 갈 것인지,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물론 자동차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하나하나 알아 나가겠지만, 경험보다 경험을 대하는 태도를 먼저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게 삶과 세상을 바꾸니까. 나를 바꾸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 목적이라면 그 작은 힘으로 인해 세상은 점점 좋아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