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부모가 10억의 재산을 남겼고, 아들이 두 명, 딸이 한 명이라면 균등하게 상속받는 것이 상식이다. 상속법에서도 균분(균등하게 배분)이 원칙이다. 특정 자녀가 이전에 이미 상속 받은 것이 있는지도 따져보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는 있다.
장남이라서, 아들이라서 유산을 많이 받고, 차남이라서 딸이라서 유산을 적게 받는 건 상식에 벗어난다. 상식과 사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보 혹은 퇴보한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장남, 차남, 딸을 막론하고 고루 재산을 나누는 것이 상식이었다.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장남에게 재산을 더 주는 장남 우대 상속을 했다. 연구자들은 재산 배분 방식 변화의 이유를 재산의 확대 재생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한정된 재산을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누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가문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가문은 모든 걸 가진 장남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자녀 많은 가난한 부모가 한 특정 자녀의 교육에만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들은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을 보내주고, 딸은 그렇지 않았던 현상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생긴 기원 같다.
아무리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현실적 필요 때문이라 하더라도 유산을 장남에게만 몰아주는 것은 이 시대의 비상식이다. 자녀 모두가 똑같은 자격이 있고,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리석은 장남 때문에 가문이 몰락하는 이야기도 많다. 투자가 그렇듯 집중보다는 분산이 중요하다. 경영도 비슷하다. 강력한 중앙집권이냐 느슨한 네트워킹이냐, 배제와 집중이냐 포함과 분산이냐는 오랜 숙제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겐 다양성 바탕의 여러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장남에게 자원을 몰아주는 것처럼 내재된 다른 가능성은 무시하고 오로지 하나의 가능성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전략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하나의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 단정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자원 모두를 오로지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기 위해 쏟아 넣는 것이 대표적이다.
장남에게만 유산을 몰아주는 것처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모든 삶을 바치는 것은 비슷하다. 더 문제는 장남만 성공하고 판치는 사회가 비상식인 것처럼,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만 인정받는 것 또한 비상식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몰빵으로 유산을 받은 장남들만 판치는 사회 같다.
자녀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고, 골고루 유산을 나눠주듯, 어린 아이처럼 부모만 바라보고 있는 내 안의 다양한 나, 다양한 나의 잠재성, 가능성을 돌아보며 골고루 자원을 나눠주면 좋겠다. 공정함은 타인이나 사회에서도 필요하지만 자신을 대할 때도 공정해야 할 것 같다. 지나친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대하는 공정하지 않은 태도다. 특정 영역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무관심도 자신을 마찬가지다. 진로는 ASAP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신화에 빠져 삶을 빛나게 할 수많은 아름다운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겠다.
교육, 배움, 성장, 이런 것들은 어쩌면 한심해 보이는 자녀에게도 재산을 골고루 나눠주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오히려 부족한 존재에게 재산을 더 주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