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by 피라

"넌 뽑을 가치가 있는 사람, 너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관점은 내 삶에서 가장 익숙하다.


긴 세월 동안 사람을 구분하는 일을 해왔다. 구분해서 뽑기도 하고, 구분해서 컨설팅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만나, "이런 사람이 되면 기업은 넌 뽑지 않아. 이런 사람이 되어야 일할 기회가 주어지니 이렇게 준비해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말을 주로 한다.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다. 스펙이나 쌓으면 다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관점에서 봐야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답이 없다. 어렵다.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도 어려운 문제고, 채용 후 구성원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건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스킬을 갖추는 문제도 아니며, 몇몇 바람직한 특성을 갖추면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복잡하고 중층적이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문제다. 그때그때 변하는 다양한 현실의 문제를 자신이 가진 지식, 스킬, 통찰을 이용해 문제 정의를 하고 한정된 자원(사람, 정보, 시간, 비용)을 잘 배분해서 해결하는 능력이 직무 역량이다.


직무 역량을 갖추려면 문제를 있는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단순화시킬 필요도 있지만, 처음부터 특정 관점으로만 문제를 정의하면 안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한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단계에서 몰랐던 걸 알게 되고, 빛나는 통찰과 아이디어도 얻는다. 문제 해결을 위한 단순화, 구조화는 그 다음의 일이다. 잘 풀리지 않는 대부분의 문제는 복잡하다. 문제 안에 여러 가치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직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제 속에 담긴 다양한 가치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능력이 전제 되어야 한다. 문제 속의 가치를 찾아 통합하고 연결하고 실현시키는 일을 통해 기업은 돈을 번다. 다양한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직무 역량을 갖추기 어려운 이유다.


전장연(전국장애인연합회) 대표가 모대학에서 강연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대학 일부 학생들이 "그런 인간은 우리 학교에 올 수 없다."며 반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근 시간에 시위를 해서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준 나쁜 인간이라는 이유 같다. 숨이 턱 막힌다. 내 생각과 학생의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할 때 부딪히게 될 온갖 문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처럼 생각하지 않다니 넌 한심하고 나쁜 인간이야!'라는 관점이 타인과 자신을 향하면 위험하다. 스토킹과 살인, 우울증 자살의 뿌리를 이루는 태도다.


일이란 문제 해결의 과정이며, 문제란 이것과 저것 사이의 간극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정보가 부족할 때는 의사소통을 통한 추가 정보를 얻는다. 이해의 과정이다. 보고서의 앞단에 나오는 현황 분석, 배경 등이다.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다. 대면해서 말을 주고받는 것만이 의사소통이 아니다. 텍스트, 영상, 온갖 형태의 정보를 통해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으니, 문제가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실현된, 실현되지 않은)를 알 수 없으니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


전장연 시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내게 불편을 준 나쁜 인간!이라는 관점으로만 단순화하면 현황 분석은 수월하게 하겠지만, 그런 접근으로 보고서를 쓰고 일을 하면 수습 평가 탈락이다.


단순히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 만으로, 단순히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재라고 판단하면 안 되듯, 단순히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인간으로 단정하면 안 된다. 그가 나쁜 인간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왜 그렇게까지 시위를 하는지 그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주장을 하는지 알고 싶다. 상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일단 정확히 알아야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움과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아직 모르는, 평생 다 모를 세상을 이루는 무수한 저마다의 가치를 하나씩 알아나가려는 마음이 호기심의 바탕이다. 대학이란 그런 호기심으로 배움의 일을 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사회 문제를 납작하게 바라보며 좋다, 싫다의 시선으로만 쉽게 단정한다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가정과 직장에서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장과 생각,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열려 있는 대학이 되면 좋겠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미처 몰랐던 것, 잘 몰랐던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한 이해가 깊고 넓을수록 돈 많이 버는 성공한 사람이 될 확률도 높다. 비즈니스란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중 경영자가 관심 가진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돈을 버는 일이다.


세상과 사람을 내게 이익, 내게 손해라는 관점으로 좋다 싫다라는 이분법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다. 딴 곳은 몰라도 대학은 그런 곳이 되지 않길 바란다. 대학마저 그렇게 변한다면 극한 갈등만 존재하는 위험 사회라는 신호다. 위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귀를 닫고 눈을 감으면 위험 사회는 결국 폭발한다. 재래식 폭탄이라면 드레즈덴처럼 성찰하며 복구가 가능하겠지만, 핵폭탄이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지 모른다. 학교가 혐오와 갈등을 양산하는 폭탄제조시설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을 배우는 곳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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