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센터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곳에서 1년 6개월째 여러 식당들을 섭렵하니 먹을 것이 없다 투정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얼마전 오픈한 곳에서 참치김치찌개를 시켰다. 맵지 않고 달지 않고 짜지 않은 걸 보니 주인장의 심성은 단박할지도 모르겠다. 찌개 국물 5분의 1과 밥 세 숫가락을 남기고 빌딩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가을의 맑은 하늘이다. 우크라이나의 하늘도 이렇게 푸를까? 하늘은 이토록 푸르고, 구름은 이토록 새하얀데 뉴스에서는 거짓으로 버무린 어두침침한 말만 흘러나온다. 선거때만 되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정치인들은 바이든이 맞니, 날리면이 맞니에 삶을 걸었다. 걷다가 멈추고 하늘을 보고, 걷다가 멈추고 하늘을 본다. 아이 눈같은 가을 하늘을 보면 꿈을 꾼다. 꿈의 이름은 학교다.
1935년에 한 소녀가 태어났다. 40여 가구가 종기종기 모여 살던 산골 마을, 충북 황금면 웅북리라 불리는 곳이었다. 8살이 되자 소녀는 난생 처음 학교라는 곳에 가게 된다. 추풍령초등학교까지 왕복 12킬로를 걸어다녔다. 소녀는 학교 가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다. 농번기, 추수철이 되면 집안일을 해야 해서 학교에 가지 못할 때가 가장 슬펐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온갖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고, 너무나 넓고 너무나 모르는 세상에 대해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뭔가를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가난한 한학자였던 소녀의 아버지, 착하디 착한 어머니는 소녀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차례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 6학년이 된 소녀는 너무나 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고아 처지에 중학교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의 실질적 가장은 올케였다. 일본으로 떠난 나이 많은 오빠를 기다리는 올케를 도와 가사 노동을 해야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울고 또 울었다. 말수도 적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생각 끝에 소녀는 가출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깜깜한 새벽 14살 소녀는 보따리 하나를 지고 집을 나와 걷고 또 걸었다. 8시간 넘게 걷고 또 걸었다. 소녀의 목표는 김천이었다. 김천에서 기차를 타고 큰 도시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괴물같은 도시에만 도착하면 학교에 가서 공부할 길이 열릴 거라 생각했다. 김천역에 도착한 소녀는 차마 기차를 타지 못하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남겨둔 5살박이 어린 동생이 떠올라서다. 소녀는 또 다시 9시간 넘게 걸어 어두운 밤에 집에 도착했다. 종일 어디갔냐고 따져 묻는 올케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녀가 자라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될까지 아무에게도 그날 어디를 다녀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소녀는 어른이 되었고, 결혼을 했고,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았다. 그렇게 엄마가 된 소녀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다. 엄마는 결심했다. 밥을 굶고 길바닥에서 자더라도 자식들은 꼭 학교를 보내야겠다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 비정함과 용기가 없어 김천역에서 되돌렸던 발길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던 때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던 그녀는 자식들에게 그런 행복을 주고 싶었다. 공부에 한이 맺혔던 탓인지 지독한 가난 속에서 4남매를 모두 대학 졸업을 시켰다. 엄마는 평생 단 한 번도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공부고 학교라는 말을 간혹 했고, 84살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독서를 했다. 내게 엄마의 이미지는 틈만 나만 나면 책을 읽으며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 모습이다. 가족들은 책을 읽으며 배우는 건 배고프면 밥먹는 것처럼 여겼다. 엄마는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 학교와 교사, 교육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사람이 배우는 일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식 네 명이 모두 교사가 되길 바랬으나 한 명만 그 뜻을 따랐다. 어느 날 갑자기 대기업 그만 두고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도 잘 결정했다고 하셨다. 엄마는 어떤 경우, 어떤 상황이라도 배움의 길은 옳다고 믿었다. 엄마는 평생을 채식주의자로 살며 그 어떤 생명도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 여기지 않았다.
오늘, 푸른 하늘을 보며 학교를 꿈꿨다. 진짜 배움으로 학생들의 가슴이 벅차 오르는 학교, 아침에 아이들이 눈을 뜨면 빨리 갈 생각에 설레는 학교, 학교에 가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찡그리고, 웃고, 생각에 잠기는 학교, 매 교시 배우는 새로운 것들을 통해 매일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학교, 남들보다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남들을 더 도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인 학교, 돈을 버는 일은 남을 돕는 일의 댓가라는 일의 원리를 가르치는 학교, 모든 교과가 개인의 고민과 관심으로 연결되는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돌아가는 학교.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재미있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하루를 보낼 지를 고민하는 학교. 그런 학교와 학생들이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학교. 학교 운영과 경영도 교과과정의 한 과목이 되는 학교. 학생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모든 세상들이 배움으로 연결되는 학교, 이 모든 것 속에서 재미, 의미,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게 도와주는 학교. 그래서 학창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경험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인 학교.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꿈. 그런 학교에서 배운 학생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능력을 발휘하고 가치를 생산하며 행복해하지 않을까?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기업은 그런 지원자를 뽑고 싶다. 그렇지 않고 참고 견디며 묵묵히 시키는 일만 하는 구성원만 필요한 기업은 폐업 또는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일은 곧 기계나 인공지능이 대신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다. 너무나 간명한 사실이고, 변화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데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변하지 않는 걸까?
학교를 좋은 곳, 의미있는 곳, 행복한 경험을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관한 필연적이고 현실적 논리, 구체적 방법과 내용, 프로세스도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듯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이 바뀔 영역은 교육이다. 필연적 귀결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바뀌느냐의 문제다. 100억만 있다면 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그 어떤 경험보다 학생이 행복해하는 학교, 졸업 후에는 수많은 기업과 기관에서 서로 채용하겠다고 난리가 나는 인재를 배출하는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순진한 생각이 자꾸만 든다. 돌아가신 엄마 때문인지, 지난 20년 동안 경험했던 학교와 기업간의 크나큰 간극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교도 기업도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진실과 진실이 만나면 문제는 풀린다. 그런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지는 못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인간이 뭔가를 배우는 일만큼 보람되고 행복한 것이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경험할 수 있는 학교,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가난하고 무식하다 여겨졌던 우리 엄마, 그녀의 손에 자란 내가 그 가능성의 근거다. 교육을 걱정하고 교육이 변하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힘이다. 삶의 힘을 키워주는 진짜 교육,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진짜 교육을 하는 학교가 많아지길 바란다. 어린 아이가 자라 그런 학교에 가는 걸 행복해하길 바란다. 그런 학교가 있는 곳이라면 삶의 문제 절반은 이미 해결되어 있지 싶다.
'학교'라는 말을 들으면 앞으로의 내 모습이 기대되어 설레고 행복해졌음 좋겠다. 학교는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