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라


8살 때 어빙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한반도에 들이닥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집 담이 무너져 있었다. 마당에 나가니 큰 길이 훤히 보였다.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우리 집의 속살을 쳐다보며 걸어갔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니 아무리 바쁜 출근길, 등교길이라 하더라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신기한 장면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히 집안에 있는데 집 바깥에 있는 듯한 느낌, 집에 있는 것도 집에 없는 것도 아닌 느낌,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시선과 마주칠 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느낌이 들었다. 시골집처럼 마당 수돗가에서 세수하는 집 구조였는데 수돗가는 무너진 담벼락 바로 앞에 있었다. 나는 분명히 집안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 기분을 아직 잊지 못한다.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 정보가 공공재가 되어버린 기분과 비슷했다. 그때 집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생각한 것 같다. 집이 아무리 아늑하고 냉난방이 잘 되고, 좋은 물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바깥 세상과 단절되지 않는 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우리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비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한 여름의 땡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집의 기본 기능은 외부 환경과의 단절이다. 요새처럼 굳건하게 만들어진 중세 시대 성이나 일기예보에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청할 수 있는 원룸의 기본 기능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이다. 집 안에서 뭔가를 하는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구조의 집은 문제가 있다. 시선만이 문제가 아니라, 자려고 누웠는데 집 밖의 세상의 소리가 들려도 문제다. 층간 소음이 대표적이다. 집의 가장 기본적 기능은 집 바깥의 시선, 소리, 온도 등과의 차단이다. 그런데 바깥 세상과의 차단에만 충실한 집은 좋은 집이 아니다. 좋은 집의 3대 요소는 채광, 환기, 단열이다.


쓰러질 듯한 시골집도 평당 2억 넘는 아파트도 집의 3가지 기본 기능에 문제가 있으면 형편없는 집이다. 좋은 집을 짓기 어려운 이유는 집에 요구되는 기본 기능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채광과 환기는 바깥 세상과 소통하는 기능이고 단열은 바깥 세상과 단절하는 기능이다. 아무리 단열이 완벽한 집도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어두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 좋은 집이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외부 세계와 소통 혹은 단절할 수 있는 유연한 기능을 갖춘 집이다. 추운 날에 창을 닫으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여름에 창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집이 대표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깥 환경과 구조적으로 최적으로 소통과 단절(열림과 닫힘)을 잘 하는 집을 짓기가 어려우니 아예 바깥 세상과 단절시키고 중앙 공조만 사용하는 집들도 많이 짓는다. 세계 최고의 공기청정기보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이지만, 황사와 미세 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지도 닫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도 집과 같다. 단열, 환기, 채광이 필요하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세포에는 세포막이 있다. 집의 벽이나 창처럼 세포 안과 세포 바깥을 단절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물세포는 세포막, 식물 세포는 세포벽이라 부른다. 채광과 환기는 되지 않고 완벽한 단열만 된 집처럼 외부환경과 완벽히 차단된 세포는 재구실을 할 수 없다. 집도 세포도 외부 환경과의 단절과 소통이 적절히 이루어져야 한다. 비오는 날에는 창문을 닫고, 맑은 날에는 창문을 열고, 일어나면 커튼을 열고 햇빛 내리 쬐는 한 낮에는 커튼을 닫듯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도 때로는 세포막(벽)을 열어 외부와 소통하고 때로는 세포막을 닫아 외부와 단절한다. 세포 경계의 분자들의 흐름을 통제하는 단백질 문인 이온 채널의 형태로 세포는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이 열고 닫힘이 적절히 되지 않으면 생물에게 문제가 생긴다.


좋은 집도 열리고 닫힘의 문제고, 몸도 마찬가지다. 몸을 이루는 세포도 열리고 닫힘의 문제로 건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감정, 기억, 생각을 이루는 시냅스의 연결과 단절도 열리고 닫힘의 개념으로 설명 가능하다. 의사소통의 문제도 열리고 닫힘의 문제다. 좋은 의사소통이란 열려야 할 때 열려서 나와 다르거나 같은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 닫힐 때 닫혀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능력이다. 확정 편향, 감정 매몰, 인식 왜곡 등에 의해 외부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때 거부하고, 외부 정보를 차단해야 할 때에 분별없이 수용하기도 한다.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잘 알아듣거나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소통은 생명 현상 본질처럼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의사소통은 논리와 개념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의사소통은 오랜 진화의 결과물인 유전자의 유기적 상호작용과 같다. 역량이라는 개념은 생명 현상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역량이란 결국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이니, 한 사람의 본질은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 시냅스 하나하나가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에 대한 문제다. 한 사람의 삶을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접하는 수많은 정보에 대해 어떤 알고리즘로 열리고 닫히는지의 문제다. 의사소통 교육은 이런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면 좋다. 좋다는 말의 의미는 범용적 통찰을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물고기 요리 레시피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운다는 뜻과 비슷하다. 더 중요한 것은 물고기와 공존하는 법을 배움으로서 각자 삶의 이유와 가치를 알아가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목적과 가장 이상적인 목적과 만나는 의사소통 교육이 필요한 까닭이다. 의사소통 교육은 스펙쌓기에 매몰되어 인공지능으로 살아가는 한국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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