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은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동안 움직임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차이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고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고 누리고 싶은 삶이 있고 현실은 그런 바람과 동떨어져 있으면 <차이>를 느낀다. 어떤 사람은 차이로 인해 무기력, 절망, 분노, 자괴감을 느끼며 멈춘듯한 삶을 산다. 어떤 사람은 차이로 인해 열정, 행동, 기쁨, 성취, 희망, 설렘을 느끼며 멈추지 않는 삶을 산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살고 싶어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차이 때문이다. 욕망과 현실, 목표와 현실 사이의 차이가 크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큰 목표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어떤 사람은 너무나 시시한 목표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저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목표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목표란 차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해 첫 월급을 받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 학생들에게 춰업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방법을 얘기해왔다. 나의 컨설팅을 받은 학생들 대부분은 취업된다는 사실에 나는 오만해졌고 내 삶의 목표를 잃었다. 목표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인데 이미 이루었으니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다. 이미 이룬 것은시시할 뿐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 운좋게 문득 한 번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차이>를 깨달았다.
기업이 사람을 뽑는 이유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다. 지원자가 해야 할 말은 일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직무 역량이다. 기업은 직무 역량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뽑는다. 사람들에게 직무 역량을 잘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그 동안 내가 해온 일이다. 항상 직무를 강조했다. 직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짧게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길게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원하는 직무가 어떤 일인지 잘 알수록 좋다. 해야 할 일에 대해 잘 알면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능력을 어떻게 발휘해 목표를 이룰 것인지도 알게 된다.
직무는 일이다. 4년 전 어느 날 새벽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대답할 수 없었다. 일 때문에 사람과 만나고, 일에 대해 말하며 일을 잘한다는 말을 텍스트와 음성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말하며, 일 때문에 돈을 벌어 왔는데, 일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내 삶의 큰 차이가 생겼다. 일이 무엇인지 알아서 사람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는 목표와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현실이 만든 차이였다. 그때부터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생겼다.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일에 대해 말해 왔으니 금방 정리가 될 줄 알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을 무렵 후회하기 시작했다. 일이 너무 큰 주제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일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사람들에게 삶에 대해 정의를 내리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민들레가 들국화에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 너도 나처럼 살아 보송보송한 씨앗을 퍼뜨려 보렴! 너도 할 수 있어! 힘을 내!"라는 자기개발의 말을 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세상에는 수많은 풀과 나무, 수많은 꽃과 씨앗이 있다. 같은 식물의 꽃과 씨앗이라도 그 어떤 것도 완벽히 똑같은 것은 없다. 어떤 꽃과 씨를 어떻게 만들어내어야 하는지 논쟁하며 서로 다투는 것은 의미없어 보인다. 풀과 나무는 이미 저마다의 꽃과 씨앗을 만드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이란 무엇인가? 씨앗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꽃과 씨앗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정도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가 더듬더듬 말을 하는 시기부터 학습 능력을 생각하며 어떤 대학에 보낼 것인지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지 생각한다. 삶을 갈아 넣어 공부를 하고 대학을 하고 졸업을 하는 이유는 뭘까? 공부하는 이유는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사는 삶의 전제는 직업이다. 교육의 현실의 이유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단 전제가 붙는다. 좋은 직업이다. 모든 직업은 일로 구성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어떤 행동들로 구성되는지를 아는 것은 직무를 아는 것이다. 그런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아는 것은 직무 역량을 아는 것이다. 그런 직무 역량을 잘 갖추면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다. 직무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성범죄도 저지르는 반사회적인 의사가 된다. 직무를 이해하고 직무 역량을 갖추는 것은 일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도 몰랐고, 주위를 둘러봐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수천명 채용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직무역량, 취업역량을 말해 왔지만 일에 대한 나의 이해는 첫 직장의 신입사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요구하는 일을 이해하고, 시키는 일을 효율적으로 잘 하는 능력 딱 그 정도 수준이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대한 전부였다. 요즘 유행하는 일잘러가 되는 법, 일을 잘하는 방법 말이다. 일이 무엇인지, 일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른 상태에서 아무리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한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일의 의미와 이유를 모르고 일하면 오래전 나처럼 번아웃되어서 퇴직하는 삶 아니면 끝까지 번아웃하는 삶 둘 중 하나일지 모른다.
일을 잘하는 방법을 말한 지 16년,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온지 4년이 되었다. 이제야 조금 정리가 된다. 일이 무엇이고, 왜 일해야 하는지, 일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 정도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에게 말해 줄 정도는 될 것 같다. 1999년 6월, 대기업의 신입 사원으로 첫 출근을 해서 어리버리했던 나에게 말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처럼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삶은 조금 달라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