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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Oct 27. 2022

과일


과일을 주스로 만들어 마시는 것보다 그냥 먹는 것이 더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써 고생을 해서 불용성 식이섬유를 굳이 버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불용성 식이섬유는 변비와 탈장을 예방하고 몇몇 암의 발병률을 낮추기도 한다.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과일, 그 중에서서 블루베리, 포도, 사과를 먹으면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낮아지지만 과일 주스를 많이 마시면 그 위험이 높아진다. 이 연구는 일주일에 세 번 마시는 과일 주스를 통과일로 대체했더니 당뇨병 위험이 7퍼센트나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 Harriet Hall, SKEPTIC


멀티 비타민 보충제를 섭취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특정 암 발병률이 더 높고 더 빨리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다. 


음식뿐 아니라 지식도 그러한 것 같다. 정제된 정보, 정제된 지식은 삶에 해롭다. 특히 특정 목적으로 정제된 정보는 더욱 그렇다. 광고, 홍보, 마케팅 정보가 대표적이다. 정치인들이 대립할 때 자신의 입장과 주장에 관한 정보만 선별적으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뿐 아니다. 인간은 다 그렇다. 뇌는 단순함과 편향을 좋아한다. 편향 때문에 인간은 배우고 학습한다. 편향은 생명을 움직이는 힘이지만, 편향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여야 삶이 개선된다. 정제된 정보는 편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자기개발의 목적,  교육의 목적으로 정보를 정제하는 현상이 걱정스럽다. 전체 정보를 구성하는 유기적 관계,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 목적, 특정 편향에 맞는 데이터만 쏙 빼서 이거만 보면 인사이트가 생기고, 하는 일이 잘 될거라 떠벌리는 수많은 정보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과일을 사서 보관하고 깎고 먹고 뒷처리조차 할 시간이 없을 때 과일 주스와 비타민을 선호하듯 시간에 쫓기고 피곤한 우리는 정제된 정보를 선호한다. 이것만 먹고 이것만 보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로 아는 것은 간극이 있다. 인간에게 의미있는 앎이란 지루하고 번거로운 경험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브랜드로 간편하게 소비하는 사과주스보다는 사과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열매가 어떻게 맺히고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냉장고에 들어가는지를 알면 지식과 지혜도 자란다. 사과를 직접 씻고, 깍고, 씹어 먹고, 섬유질이 긴 시간을 지나 몸 밖으로 다시 나오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때 몸도 삶도 성장한다. 


정제된 정보로부터 비타민 같은 통찰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통찰을 통해 정제된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남을 가르치든 스스로를 배우든 문제를 해결하든 주어진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는 일이 첫 단추를 꿰는 일이다. 힘들어한다고 대신해 주면 아이는 단추를 스스로 잠그고 풀 수 없다. 단추를 풀고 여는 것과 연관된 수많은 시도와 실패, 짜증과 인내, 재미와 자부심이 알알이 맺힌 조각의 경험들과 그 경험을 반추하는 생각이 서로 화학적으로 결합해야 비로소 단추를 스스로 잠그고 풀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한다. 


씨앗에서 시작해 한 알의 사과로 영글어가듯 삶에 힘이 되는 지식이란 그렇게 정제되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지식의 정제가 필요하다면 그건 시작의 단계나 마지막 단계에서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처음, 중간, 끝이 정제된 정보로 이루어진 일상은 텅 빈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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