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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Oct 30. 2022

2003년, 3개월 동안 북미 여행을 했다. 덴버 외곽 보울더에 있는 한 대학에서 시간을 보낼 때 우연히 춤 수업을 참관했다. 옷과 얼굴이 땀 범벅이 된 10여명의 학생들이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한 차례 연습이 끝난 뒤 지쳐 널부러진 학생들에게 다가온 교수가 다가갔다. 그때 교수의 말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진짜 춤은 아무리 추어도 지치지 않아요."



나는 춤을 머리로만 좋아했다. 춤의 개념은 좋아하는데 몸은 통나무였다. 초등학교 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6학년 때 춤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난감하고 싫었다. 대학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으로 나이트라는 곳을 갔는데 참 싫었다. 시끄러운 것도 싫었고 춤을 추는 것도 재미없었다. 운동은 잘 했지만 춤은 몸치였다. 몸의 문제라기보다는 리듬을 타지 못하는 감각의 문제 같았다. 마흔 즈음에 피아노도 배우고, 수영도 배우면서 외부 리듬에 몸을 맡기고 감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법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 춤은 틀린 것 같았다. 마음은 댄서지만 몸은 소나무 재선충 걸려 벌채된 통나무였다.



2년 전부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런 내가 리듬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춤을 추게 된 것이다. 때때로 혼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일기를 쓰는 것 같은 행동이라 남에게 보여준 적은 없다. 음악이 내 몸으로 흘러 들어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안다. 춤이 즐겁다. 왜 사람들이 춤에 빠지는지 이제는 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음악이 없어도 된다. 외부의 어떤 청각적 정보도 춤을 추기에 충분하다. 정적 속에서는 내 맥박이 음악이다. 



삶은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이다. 춤은 나와 세상과의 상호작용이다. 춤과 삶은 똑같다. 세상의 리듬을 느끼며 하나가 되는 느낌, 나의 리듬을 느끼며 세상의 리듬과 화음을 이루는 느낌. 느낌뿐 아니라 몸이 리듬에 반응하며 움직이는 경험. 춤을 추는 내가 있고, 춤을 추는 나를 또 다른 내가 관찰하는 느낌. 그런 느낌이 참 좋다. 한 동안 춤을 추지 않았다. 매일 5분씩이라도 춤을 춰야겠다. 춤추듯 살아야겠다.



춤추듯 살면 사는 것이 힘들지 않으리라, 진짜 춤은 지치지 않으니까. 춤은 한 존재가 자신이 속한 세상과 공명하는 행동이다. 공명하려면 무언가에 나를 맡겨야 한다. 서핑할 때 파도의 흐름, 물의 미묘한 리듬에 나를 맡기듯 상황에 나를 던져 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속에서 쓰러지고 물도 먹으며 수많은 실패의 반복을 해야 비로소 판떼기 하나에 몸을 올려 파도를 탈 수 있다. 서핑, 춤, 일, 글쓰기는 서로 비슷하다. 춤추듯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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