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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by 피라


세상에 사과가 없다면 우리는 사과라는 존재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을까? 사과의 향기, 사과의 모양, 사과의 사각거림, 사과의 맛을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을까? 사과가 없더라도 자두, 복숭아, 감, 배 같은 과일을 보고 사과같은 과일을 생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과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과를 생각할 수 있을까?


밀을 재배하고 유통하는 사람이 없다면, 빵을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택배 노동자가 없다면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빵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가 타인의 삶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해서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상 없이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며 나의 생각이 나로부터 나온 것이라 착각한다. 틀렸다. 내 머리 속 생각은 바깥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완전한 어둠 속에서 아무런 자극(정보)가 없는 곳에서 물과 음식으로 생존만 한다면 우리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뭔가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세상에 그만큼 빚을 졌다는 뜻이다. 세상으로부터 얻은 정보들 덕분에 우리는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처럼,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나를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 아닌 것들이다.


비올레타 파라와 메르세데스 소사가 노래했던 'Gracias a la Vida'의 가사처럼 망치소리, 터빈소리, 개소리, 빗소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 때문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그런 대상 덕분에 비로소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피어오른 생각을 어떻게 전개시킬까는 오직 자신의 몫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 생각이 대상으로부터 피어올랐듯, 타인의 생각은 그런 내 생각으로부터 피어오른다.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들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드는 것은 주고받음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건 최초의 상호작용을 일으킨 무엇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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