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by 피라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다. 20년째다. 첫 직장을 다닌 지 3년 뒤부터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내게 뭔가를 지속적으로 물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말해주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질문은 채식을 왜 하느냐였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했다. 어떤 때는 긴 대답, 어떤 때는 짧은 대답을 했다. 사람들은 계속 물어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채식의 이유를 말하다보니 채식에 대한 생각이 점점 뻗어 나갔다. 머리 속에서 넘쳐나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첫 글은 도대체 왜 채식을 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왜 퇴직하려 하느냐였다. 이번에는 좀 현명해졌다. 사람들이 묻기 전에 미리 체계적인 대답을 하기로 했다. 노트북을 샀고 퇴직의 이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목표는 퇴직하기 전에 <퇴직 이유>라는 제목의 책을 내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퇴직 이유는 <삶의 이유>로 바뀌었고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이 보태어졌고 아직도 미완성이다. 그 동안 몇 권의 책이 나왔지만, 첫 책은 아무래도 백발이 성성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쯤이나 마무리될 것 같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야 자동차가 움직이듯 인간도 에너지를 넣어야 움직인다. 인간의 입으로 넣는 밥과 코로 넣는 숨인 에너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시동을 켜는 점화 장치다. 중요한 삶의 점화 장치는 질문이다. 질문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불꽃이다. 점화장치에 불꽃이 튀어 엔진이 돌아가듯 질문은 삶을 움직인다.


여러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면 삶의 루틴이 생기고, 같은 질문에 그때그때 다른 대답을 하면 삶은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이는 서로 다른 질문에 한결같이 똑같은 대답을 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질문에도 다른 대답을 한다. 한결같음을 무조건 찬양하면 삶이 영원히 정지하는 수가 있다. 상황과 상대에 상관없이 한결같은 생각과 말만 하는 캐릭터를 종종 본다. 자신과 세상을 납작하게 보며 언제나 똑같은 말만 반복하면 사람이 떠난다.


삶의 길에서 뭐라도 묻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무엇을 묻고 답을 어떻게 찾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내 삶이 왜 이렇게 엉망으로 되어버렸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어떤 이는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어떤 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배우기를 시작하고 타인을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길로 뛰어든다.


공교육 12년 동안 배워야 할 것은 세상과 자신을 향해 무엇을 묻고, 그 물음에 어떤 태도로 대답해야 하는지다. 질문은 문제를 정의하는 일이다. 삶과 세상의 문제를 정의하고, 각각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이가 갖춰야 할 역량의 본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살아야 하는지 각자의 이유를 찾는 일이다. 아무리 멋진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문제 정의와 해결의 이유를 모른다면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곧 멈춘다. '왜'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삶이 점점 꼬일 가능성이 높다. 불행히도 한국의 공교육에서는 자신만의 질문과 대답의 이유를 찾아내는 연습 시간이 부족하다. 남의 대답을 외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쏟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사회에 나와 좌충우돌하며 현실 삶에 도움되는 질문과 대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남의 질문과 남의 대답에 빠진 매뉴얼 인생에 익숙한 사람은 자신의 질문과 대답을 해내기 어렵다. 뱀처럼 허물을 벗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리스크는 자기부정이다. 의미 있는 질문, 앞으로 나아가는 질문은 자기 부정과 닿아 있다. 자기 부정의 질문을 자기 긍정의 대답으로 이어가는 것이 지혜며 삶에 도움되는 지식이다. 엔진의 크랭크축이 돌아가듯 자기 부정과 자기 긍정의 질문과 대답으로 삶을 돌려야 한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돈은 에너지의 응결체다. 에너지가 많은 상태 자체는 무엇도 말하지 못한다. 엔진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최소한 80억개의 엔진이 있다. 한 명 한 명의 삶이 곧 엔진이다. 내 삶의 엔진이 서서히 멈추고 있다면 엔진의 문제인지, 에너지의 문제인지 돌아 볼 일이다. 삶을 관통하는 질문과 대답은 내 삶의 엔진이고, 그때 그때 떠오르는 다양한 질문들은 엔진을 돌리는 에너지다.


타인이 만든 질문, 타인의 대답으로 살지 말자.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자. 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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