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무렵 내 살던 부산에서도 박쥐를 종종 보았다. 어둑어둑해지는 도로 위로 박쥐들이 삼삼오오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뒤로 박쥐를 직접 본 건 발리에서 날개를 접은 상태의 길이가 40센티나 되는 큰 박쥐를 본 게 전부다.
어릴 적 흔히 볼 수 있었던 전통 옷장의 손잡이는 박쥐를 본땄다. 중국 문화에서 박쥐는 오복을 상징하는 좋은 동물이었고, 한국은 그 영향을 받은 듯하다. 수천 종의 박쥐 중 흡혈 박쥐는 단 3종이다. 흡혈 박쥐는 우리가 상상하듯 드라큐라처럼 피를 빨지 않는다. 중남미에 사는 7~8센티미터의 조그마한 흡혈 박쥐는 소나 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모기처럼 발목 부위의 피를 빤다. 박쥐가 피를 빠는 것도 모른다고 하니 모기보다 미약한 느낌인가 보다.
대부분의 박쥐는 과일이나 벌레같은 고열량의 음식을 먹는데, 피는 90퍼센트가 물이다. 흡혈 박쥐는 항상 배고프다. 보리고개 시절 배고플 때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것처럼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다. 매일 7퍼센트의 흡혈 박쥐는 헛탕치고 돌아와 굶주린다. 흡혈 박쥐는 굶주린 박쥐에게 자신이 애써 먹은 피를 토해 동료를 먹인다. 도움을 받은 박쥐는 다음에 그 동료에게 또 먹이를 나눠 준다.
평화의 한자어 풀이는 밥을 골고루 나눠 먹는다는 뜻이다. 흡혈 박쥐는 지금 피를 나눠줘야 나중에 굶주려 죽지 않는다는 투자와 보험의 개념을 터득한 것 같다. 흡혈 박쥐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다. 남을 돕는 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인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박쥐로부터 한 수 배워야겠다.
*박쥐 생태 내용(7퍼센트 부분) 참조 : 기회주의자 박쥐와 따뜻한 사회의 조건, 박한선 신경인류학자, 스켑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