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람들의 이상한 특성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빌라같은 공동 주택에서 외출을 하려는 순간 앞집(혹은 옆집) 사람이 외출하려는 기척이 들리면 숨을 죽이고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계획 없이는 타인과 마주치는 것도 꺼려하기 때문에 이웃이 사라진 뒤에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스웨덴 사람이라 여긴 적이 있었다. 내가 항상 그렇지 않듯 모든 스웨덴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골목길에서 아는 이웃과 마주쳐 원치 않는 대화를 하게 되는 상황을 꺼려하는 이중성. 그건 내 공간과 내 시간의 다른 말인 프라이버시를 침해 받고 싶지 않은 마음 같다. 나를 만드는 것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인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꺼려하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바라는 모순적 상태가 내 삶이다.
이번 주에 3건의 부고가 있었다. 돌아가신 친구 아버지를 모신 남해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찾아 뵈어야지 생각한 지 10년은 지났는데,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말았다. 찾아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친구 부모님이 많다. 그래야겠다 생각만 할 뿐, 한 번도 실천하지 못했다.
또 부고를 받고, 또 부고를 받을 것이다. 그때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할 것이다. 나중에는 그런 후회가 익숙해져서 후회를 통해 제대로 살고 있다는 요상한 안도감에 인생을 맡길 것이다.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도 떠날 때가 되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후회할 지 모르겠다. 원래 생각대로 문을 열고 나가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운동하면 좋은 걸 알지만 운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마음을 다루는 일이 삶의 문제다. 아는 것으로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힘이 없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라는 중력과 맞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의 힘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