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32킬로그램. M60기관총의 무게다. 30년 전에 외웠던 것인데 지금도 기억난다. 1992년 9월에 신병 훈련을 마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달았다. 배치 받은 부대에서 신병 소개를 하기 전 이등병 고참이 신신당부했다. 그건 어떤 일이 있어도 등산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군생활을 한 곳은 백두산부대라고 불리는 강원도 양구의 최전방 21사단이었다. 자대 배치를 받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왜 신병이 등산이 취미라는 말을 하면 안되는지 알게 되었다. 부대 모토가 전천후 최정예 산악부대였고, 계절에 상관없이 12개월 중 대략 8개월을 산에서 지내는 부대였다. 산생활은 1~2주 동안의 훈련과 작업 두 가지로 나뉘는데, 훈련을 나가면 하루 10시간 이상 끝없는 산악행군을 했고, 작업을 나가면 한 곳에 머물며 진지 구축을 위해 흙과 띠(잔디류)를 나르며 일과 시간 내내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3월부터 11월 사이 대부분의 날은 산을 타며 산에서 먹고 잤다. 겨울에는 당일 제설작업을 위해 산을 넘었고, 자고 나면 군화가 얼어 돌덩이가 되어버리는 혹한기 훈련도 있었다.
나는 화기분대라 완전 군장 위에 10킬로그램 무게의 M60 기관총까지 얹고 행군을 했다. 전천후 최정예 산악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몸을 관절과 연골의 희생이 필요했다. 무릎이 정상인 병장은 거의 없었다. 십자인대가 파열되거나 계단을 뒷걸음질로 내려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도 제대 후 첫 겨울에 육교를 내려가다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프고 말을 듣지 않고 육교 위에서 30분 동안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추석 연휴에 설악산 봉정암을 다녀왔다. 백담사에서 왕복 20킬로 정도의 산행이었다. 등산을 제대로 해 본 지 10년도 넘었고, 무엇보다 하산길에 무릎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었다. 무릎은 괜찮았지만 오래 동안 등산 근육을 쓰지 않은 탓에 몸이 예열되기도 전에 다리가 후덜거렸다. 힘이 빠져버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다 보니 몸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겼다. 8킬로 정도 지점에서 무릎 뒤 양쪽 인대에 문제가 생겨 다리를 지면에서 20센티 이상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고통을 참으며 억지로 봉정암까지 올랐다. 인대 상태는 심각했지만 다행히 평지와 내리막은 걸을만했다. 하산길이라고 내리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돌계단이 있어 많이 힘들었다. 어찌어찌하며 11시간만에 왕복 20킬로 산행을 마치고 백담사에 도착했다. 자고 난 다음 날에도 인대가 아파 계단을 오를 수 없었다. 이틀을 자고 나니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등산을 하면서 잊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산을 정말 좋아했었다. 6살쯤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새벽 등산을 다녔다. 아버지는 구덕산 약수를 매일 떠오셨다.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에 출발해서 왕복 2시간 거리의 옥천이라 불리는 약수터를 다녀왔다. 아버지와의 새벽 산행은 내가 원해서 갔는지, 가자고 해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을 아버지와 새벽 산행을 다녔고, 나도 모르게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방학이면 매일 새벽 약수터가 있는 산에 갔다. 아버지와 가기도 하고, 친한 친구와 가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주말이나 방학에는 낮에도 공부할 책을 지니고 산에 갔다. 산을 오르고 산을 뛰어다니다 적당한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공부를 했다.
봉정암을 오르며 알게 되었다. 나는 산과 함께 자랐던 아이였고, 사춘기를 산에서 보냈고, 산을 정말 좋아했던 사람, 지금도 여전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생태철학, 환경운동, 귀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산을 좋아했던 마음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도 강압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공부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듯, 그렇게 산을 좋아했던 나였지만, 등산을 강압적으로 해야 하는 곳에서 군생활을 한 뒤 산과 멀어졌다. 제대 후 한 참 동안 산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봉정암을 다녀오며 아버지 품 같은 산과 다시 친해져야겠다고 결심했다. 위태위태한 무릎과 나날이 쇠퇴하는 몸이 얼마나 버텨줄지는 모르겠다. 흐르는 세월을 대하는 현명한 방법은 단련이다. 가능하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몸이 버거우면 정신이라도 단련해야 한다. 해보지 않고, 좀 해보았다는 생각에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단련의 시작이다. 단련의 전제는 각성과 수용이다. 이런 결심과 삐걱거리는 무릎 사이 어느 지점에 삶의 길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