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두 번 머물렀다. 도합 4개월 정도 있었다. 처음 머물렀던 곳은 선데이 마켓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 근처였다. 시장이 열릴 때 한 사찰의 널찍한 정원이 수많은 음식점, 판매점으로 바뀌었다. 내가 머문 곳은 그 사찰 맞은 편 골목 안의 흰색 이층집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일요일이면 관광객들 때문에 앞으로도 뒤로도 걷기 힘든 건 물론 좌우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지는 메인스트리트였지만, 골목 안쪽으로 20미터만 들어가면 인적 드문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예전 카트만두에서 내 어릴 적 향수를 느꼈다. 골목이라는 바깥 공간에서 음식, 놀이, 친목, 휴식 등의 일상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면 때문이었다. 골목길 마다 환한 표정의 아이들이 자유분방하게 뛰어노는 모습, 이웃들이 골목길에서 함께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70년대 한국에 온 느낌이 들었다. 치앙마이에서 내가 머물던 골목길은 그때 카트만두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정겹고 추억 서린 골목이었다. 난 그런 골목을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국가란 그런 골목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골목을 만끽했다. 골목을 찾아 떠난 여행이니 내가 사랑하는 골목을 하루에 4,5번씩 산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두 달 동안 똑같은 골목을 다녔지만, 하루도 싫증 나지 않았다. 싫증은커녕 떠날 때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쉬웠고, 지금도 그립다. 골목에는 사람이 있다. 음식점, 세탁소, 게스트하우스, 노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장사를 하지 않는 현지인들도 있다. 서로 안면이 트인 뒤에 마주칠 때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 중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명은 아침을 먹는 단골집 식당 주인이었고, 한 사람은 자신의 오래되고 허름한 집에 입구에 손글씨로 간판만 내걸고 돈 받고 세탁을 해주던 아주머니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탁소 아주머니와 마주치다 보니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도 골목을 떠나지 않고 왔다갔다하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어느 날 태국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그날부터 아주머니는 태국어 선생님이 되었고, 나는 학생이 되었다. 교실은 세탁소 앞 골목이었다. 마주칠 때 서로 시간이 되면 5분, 10분 정도 길에 서서 태국어를 배웠다. 아주머니는 어눌한 영어로 나에게 태국어를 가르쳐 주셨다. 물건, 음식 재료, 일상의 용어와 표현 위주로 배웠다. 나의 태국어 선생님은 그때 그때의 상황을 주제로 눈에 보이는 물건 등을 손으로 가르키며 가르쳐 주었다. 더 나은 학생이 되기 위해서 공책에 표현과 단어를 받아 적었다. 아주머니 덕분에 재래 시장 어디를 가도 태국어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준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화장실 어디있습니까? 이거 얼마입니까?" 정도와 숫자 몇 개만 기억이 난다. 모두 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느껴진다. 아주머니의 집은 10평이 될까말까할 정도로 작았는데, 그 작은 집 안에 있는 우물을 보여주며 자랑하곤 했다. 마당이 아니고 신발을 벗고 문을 들어서자마자 좁은 부엌인데, 주방이자, 세탁작업실이자, 거실인 그 좁은 공간 한 가운데에 작은 우물이 있는 신기한 구조였다.
치앙마이를 떠나던 날 골목길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했다. 10여명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중 세탁소 아주머니가 가장 아쉬워했다.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주머니와 악수를 하며 그녀의 손을 보았다. 새끼 손가락과 그 옆의 손가락 두 개가 없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치앙마이와 태국을 생각할 때마다 세탁소 아주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왜 두 달이 지나서 헤어지는 순간에 그 손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아주머니가 의도적으로 감춘 것인지, 내가 관심 있게 보지 않은 탓인지 모르겠다. 헤어지기 전날이라도 알았더라면 손가락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사연을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날, 손가락 3개만 남은 아주머니와 악수를 한 후, 나는 사연을 물어보는 대신 짧은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골목에는 사람이 있다. 사연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 어른, 개, 고양이 할 것 없이 다양한 존재들이 자아내는 삶의 모습들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골목의 풍경을 직조한다. 골목이 그립다. 나 어릴 적의 골목도 그립고, 세탁소 아주머니가 살던 골목도 그립다. 하교길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땅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기도 했던, 모두의 삶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던 그 골목이 그립다. 골목은 내가 아는 국가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 했듯, 국가는 골목에 있다고 생각한다. 펼치고 싶은 각자의 삶을 일상이라는 이름의 구체적 모습으로 시작하는 그곳,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처음으로 만나 순수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일상의 길 말이다.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보인다. 온통 침묵의 길, 침묵의 골목이다. 나 또한 침묵의 동조자다. 침묵하며 침묵을 걱정하는 삶, 그게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