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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Nov 26. 2022

공무원


한 학교로부터 공무원 면접을 앞둔 학생들 모두가 합격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떻게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이 분야에서 내가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난 팔랑귀라 썩 내키지 않는 일도 실력을 인정해주면 마음이 바뀐다. 이런 일은 하기 싫다는 생각과 학생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서로 부딪힌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 그들의 삶에 진짜 도움이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질문이지만 대부분 관심없다. 그냥 합격만 원할뿐이다. 그냥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냐는 질문에 최소 2회에 8시간이 필요하다 말했다. 


어제 학생들을 처음 만났다. 역시나다.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 절실한 마음이 담긴 눈빛을 가진 학생도 없었다. 자신만의 직무 역량을 말하는 학생도 없었다. 학생들은 큰 돈을 주고 취업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그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말을 해라. 이렇게 말해라’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공부의 본질적 이유를 모른 체 공부를 해야 하니까 공부를 하는 것과 똑같다. 이렇게 해야 한다니까 그렇게 할 뿐이다. 대부분 그런 상태니 그 중에 조금 나은 지원자를 뽑는다. 뽑힌 사람은 자신의 취업 준비 방식이 주효했다고 착각한다.


난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지원자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들 스스로 깨닫고 그들 스스로 변해서 그들의 삶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그 결과로 자신만의 자소서를 적고 자신만의 대답을 해야 한다. 그런 지원자는 눈빛부터 다르다. 느낌이 딱 온다. 그런 진정성 있는 지원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합격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기나긴 삶을 위해서다. 2시간 특강이나 한 두시간의 컨설팅으로 한 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삶은 바뀌지 않는다. 진짜 직무 역량을 갖추는 일은 삶을 바꾸는 일이다. 수영을 배우듯, 피트니스를 하듯 오랜 시간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최소 한 학기, 1년이 필요한 일이다. 배웠으면 스스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취업준비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어야 한다. 


퇴근 길에 와인을 한 병 샀다. 저녁을 먹으며 절반을 마셨다. 요즘 생각이 복잡하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정받는 일을 통해서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모르겠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를 것이다. 사회적 수요가 분명한 일을 외면하고 혼자 가치있다 여기는 것에 집착하며 둘 사이에서 오랜 시간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나름 인정받는 토로트 가수가 혼자서 클래식 음악적 성취를 이루겠다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토로트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학생들에게는 자신 생각에 매몰되면 안된다 말하며 정작 나는 내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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