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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by 피라


새벽에 일어나 앉았는데 바깥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이웃집 담벼락 근처에서 울려퍼지는 금속성 고양이 울음소리다. 앙숙 길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 마리의 공격적인 외침, 한 마리는 불합리한 처우에 저항하는듯한 부르짖음이다.


이 동네에서 길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한 지 10년째다. 마당 한 켠에 동네 길냥이를 위한 물과 사료를 놔둔다. 겨울에 두어 달 해외에 있을 때는 고양이 밥을 줄 사람을 구했다. 여행자가 빈집에 머물면서 밥을 주기도 했고, 이웃이 주 2, 3회 방문해 밥을 주기도 했다. 거의 매년 여행을 떠났는데, 2019년부터 여행이 멈춰 고양이 밥 줄 사람 구하는 힘든 문제는 사라졌다.


10년 동안 목마르고 배고픈 이를 위한 마당의 물과 사료 그릇이 빈 적 없다. 어릴 적 성당에 다닐 때 ‘가장 초라한 모습의 누군가가 네 집 앞에 서 있으면 그가 바로 나다.’라고 말했다던 예수의 말이 떠오른다. 내겐 길냥이가 예수다. 길냥이뿐 아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예수다. 성당 안 간지 40년째인 내겐 길냥이에게 밥주는 것이 영성체다.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귀한 손님처럼 대하지 않는 종교는 사이비다. 종교도 정치처럼 자기개발의 비즈니스가 되는 것 같다. 길냥이들이 살아가는 이런 동네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일도 자기개발 끝이라 여기는 사람들처럼.


길냥이 밥을 처음 줄 때는 걱정스러웠다. 오늘처럼 고양이가 날카롭게 울면 이웃집에서 싫어할까봐서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이 ”당신이 고양이 밥을 줘서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잔다.”고 항의할까 걱정되었다. 다행스럽게 큰 갈등은 없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옆집 아저씨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고양이들 없으면 큰 일 납니다. 제들 없으면 쥐가 들끓어요. 특히 이런 동네는 끝장납니다. 고양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해요.” 그 뒤로 아저씨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처럼 새벽에 고양이가 소리 지르면 마당으로 달려 나가 울음소리가 멈추게 애썼다.


그 동안 밥먹으러 오는 길냥이들이 많이 바뀌었다. 기억나는 녀석들이 대략 30마리 정도다. 매일 오던 녀석들이 오래 동안 보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하러 온 녀석도 있었고, 묻어 달라는 듯 마당에 죽어 있던 녀석도 있었다. 그런 애들은 마당에 묻어 주었다. 뚜렷한 직업도 없고 자기 소유의 집도 없고 말도 못하지만 그들이 인간보다 나은 점도 많다. 특히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너희들은 너희들이고 우리는 우리다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생각부터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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