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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an 04. 2023

생각의 무게


지난 연말에 출판사 대표와 통화했다. 지난 책들의 판권은 모두 내가 가지기로 했다. 최초 목적은 테스트 삼아 빠르게 전자책으로 발행하는 것이었다. 첫 책은 5만부 정도가 팔렸다 들었다. 출판사 대표가 미안하다고 했다. 30만부는 팔릴 거라 생각했단다. 헛바람은 그때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500부 팔기도 어려운 출판계의 현실 속에서 전자책이 나오면 100명만 읽으면 좋겠다. '스펙쌓기의 폐해'라니.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착하게 살면 복이 들어온다'는 고조할머니 넋두리같은 소리다.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쓰고 싶다. 안된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려는 자는 알콜중독자가 되기 마련이다.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발행하는 것과 완전히 새 책을 쓰는 것 사이 어디에서 선택해야 한다. 욕심은 일을 더디게 만든다. 나다움으로 일을 멋지게 하는 것과 욕심을 부리는 것을 착각하면 안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상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방황하는가? 어떤 이는 자기개발의 번아웃에 빠져 당근과 채찍으로 삶을 질주시키고, 어떤 이는 무의미의 늪에 빠져 흐릿한 눈으로 세상으로 응시하기만 한다. 뜻이 크고 깊을수록 솜털처럼 가벼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결함없는 완벽한 것을 향한 추구는 무위의 세계로 입장하는 티켓이다.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꿈,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고 싶은 갈망은 지금 현재의 내 모습, 내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한 번에 바꾸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삶이란 일필휘지로 멋진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아니라, 찰흙을 주물며 깎고 보태는 지루한 반복과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뜻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려면 현명해야 한다. 실용적 현명함으로 위해 불완전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상에 드러낼 줄 아는 용기, 약간의 뻔뻔함과 겸손이 필요하다. 완벽함의 추구는 관념적으로는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나, 혹은 나와 연관된 것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는 메타 인지적 태도가 필요하다.


2010년에 첫 책을 출간했지만, 첫 책 계약은 2006년도다. 초등학생 대상의 생태동화였고, 멧돼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고의 완성도가 낮아 출판이 무산되고 몇 해 뒤에 한 출판사에서 멧돼지 생태에 대한 풍부한 자료들이 많으니 그걸 책으로 내면 좋겠다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난 자료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책의 목적이라고 했다. 비전공자인 나는 멧돼지 생태에 대한 자료집을 낼 자격이 없다 했다. 그때쯤 출판사를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그때 책을 내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다. 책에 대한 나의 접근이 잘못되었다. 글은 크게 에세이와 비에세이로 나뉜다. 하고 싶은 말, 즉 주관적 생각을 담은 글은 에세이다. 주관적 생각은 팩트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팩트 위주의 객관적 정보가 담긴 글은 주관적 에세이의 반대편에 있다. 주관성과 객관성의 양끝점 사이 어딘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낸다. 대부분의 글은 팩트에 대한 주관적 해석 혹은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 팩트를 활용한다. 이 지점에서 팩트와 생각은 목적에 의해 축소, 과장, 왜곡된다. 저자의 양심과 절대 진리가 없다는 생각 사이에서 글은 길을 잃고 헤맨다. 


글과 삶은 동기화되고, 글로써 삶을, 삶으로 글을 개선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팩트 속으로 깊이 깊이 파고들어 둘의 관계를 독창적으로 멋지게 해석한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진실한 삶의 경험이 튼튼한 기초가 되어야 한다. 현실 삶에 도움까지 되면 더할 나위 없다. 개념은 쉽지만 무척 어렵다. 어떤 영역이든 근원까지 닿으려면 한 평생을 바칠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지난한 과정을 부담스럽게 여길 것인지, 재미있게 여길 것인지가 삶을 가르는 선택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무게를 둔 과거의 내가 부끄럽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팩트와의 자연스런 상호작용의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정해 놓고 시작하는 게 아니다. 처음, 중간, 끝을 미리 정하면 재미가 줄어든다. 재미는 의미와 가치의 시작과 끝이다.


물체가 잘 움직이려면 적당한 무게가 있어야 한다.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일정 속도가 되기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고, 무게가 너무 가벼우면 금방 빨리 달리지만 움직임이 불안하고 가속도 유지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생각의 무게를 줄이고, 생각이 적은 사람은 생각의 무게를 늘려서 적당한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변하는 상황과 조건에 따른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실현 가능한 생각을 행동을 옮기는 좋은 방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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