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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an 03. 2023

스시



문제 해결과 문제 풀이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풀이'는 모르거나 어려운 것을 쉽게 밝힌다는 의미고, '해결'은 얽힌 것을 잘 처리한다는 의미다.


요즘 해석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음... 한식을 잘 해석했네..."라고 말하면 뭔가 음식에 대해 잘 아는 사람 같다. 해석은 풀이와 가까운 뜻이다. 뭔가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면 '독특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음식 평론가 입장에서 보면 풀이는 주관적 해석이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풀이'는 객관적 정답이 있는 것, '해결'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의미가 강한 것 같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문제에 대한 정답을 빨리 빨리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라기보다는 문제 풀이라 말하는 것이 맞겠다. '풀이'는 속도가 관건이다.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대박을 친 음식이 있다. 우리가 아는 스시다.  일본에서는 7세기경부터 스시를 만들어 먹었단다. 하지만 만드는데 정성과 시간이 너무 들어가서 쉽게 많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스시는 생선을 밥과 함께 발효시켜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삭혀서 만드는 음식이었다. 오랫동안 발효되어서 신맛이 나는 스시 맛을 보려면 엄청난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 했으니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쯤에 식초가 보급되면서 쌀밥에 생선을 섞고 식초를 뿌려 하룻밤을 재워서 좀 더 쉽게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1824년 요헤이라는 사람이 오늘 날의 도쿄인 에도에서 음식점을 열고, 신선한 생선을 얇게 썰어 식초를 친 밥에 얹어 팔기 시작했단다. 일종의 패스트푸드인데 대박을 쳤단다. 그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스시의 시초다. 이 음식이 엄청나게 인기가 많아서 1852년, 그러니까 30년 뒤에 발간된 기록에 의하면 사방 100미터 정도의 지역에 생선 초밥을 파는 집, 즉 스시집이 12곳 넘게 있었다고 한다.


전통 스시를 본따 편법으로 만든 요헤이의 패스트푸드 스시에 대해 누군가는 짝퉁스시, 누군가는 스시를 잘 해석했다고 말할 것이다. 오랜 시간 발효된 맛을 내기 위해 식초를 뿌리고, 스시의 주재료인 날생선을 올려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스시의 원래 맛을 포기하는 대신 '빠름'을 선택했다. 전통 스시와 패스트푸드 스시의 차이는 많지만 공통점은 시큼한 맛이다. 스시를 먹고 싶은 마음과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없음의 문제를 '식초'로 해결한 것이다. 아니 해결이라기보다는 스시를 식초로 해석한 풀이로 보는 것이 맞겠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의 문제를 '검색'으로 해결한다. 검색은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때때로 정확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예전 사람들은 몸으로 부딪히는 시행착오를 통해 느리게 문제를 해결했다. 예컨대 아이들의 애니매이션을 보면 주인공은 온갖 일들을 겪으면서 좌충우돌하며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요즘 애니매이션은 물어보면 다 말해주는 스마트기기가 등장한다. 요즘 주인공들은 사물의 실재, 현실 삶과 대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다. 쉽고 빠르게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가 아이 때부터 길러진다. 아이가 좀 크면 엄마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대신 스스로 검색한다. 예전 아이는 세상과 직접 대면하며 뭔가를 궁리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IT기기에서 즉답을 찾는다. 누군가가 이미 풀이한 답, 정해진 답, 마케팅 등의 감춰진 의도로 만들어진 답을 찾는 행위는 해결이 아니라, 풀이에 가깝다. 풀이는 정해진 알고리즘이다. 정형적 알고리즘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런 능력을 기르기 전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정형적 구조에 고착되면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진다.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과의 의사소통 능력은 문제해결의 본바탕이다.


아이의 문제 풀이 능력을 고도로 발달시키는 것은 인간을 인공지능화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AI와 경쟁하면 어짜피 진 게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길을 가야한다. 그게 AI 시대에 살아남는 길,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름'과 '쉬움'보다는 고통스럽고 짜증나지만 현실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지난한 '궁리'의 과정을 몸으로 체득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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