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편지'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휴학을 했다. 이듬해에 첫 배낭여행을 떠났고, 예루살렘에서 우연히 영화 편지의 원작자인 권형술작가를 만났다. 우린 금방 친해졌고 그와 더 있고 싶어 예루살렘에 3주 가까이 머물렀다. 첫 직장 퇴직 후에도 그 형이 혼자 머물고 있던 북제주 월정리로 달려가 한 달 넘게 머물렀다. 긴 북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북제주 구좌읍 중산간 마을에 머물던 형의 거처에서 한 동안 지냈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긴 세월이 흘러도 만나면 언제나 새로이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때 형이 중국에 오래 머물던 시절이 있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어머니가 계시는 포항에 갔다가 부산에 들렀다. 그때쯤 형으로부터 들은 말 하나가 평생 잊히지 않는다.
베이징에서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영어는 돈을 받고 가르치고, 한국어는 공짜로 가르친다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영어는 돈을 들여 배웠고, 한국어는 공짜로 배웠기 때문이란다.
어떤 말은 아무리 내 걸로 만들려고 해도 콩가루처럼 흩어지기만 하고, 어떤 말은 나도 모르게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취업 교육을 오래 했지만 취준생들의 돈을 받은 적은 없다. 학교나 기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세금으로 편성되고 배분된 예산이 나의 주수입원이었다. 간혹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알려주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메일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취준생들의 자소서 클리닉, 면접코칭, 진로 상담을 해 왔다. 학생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는 것이 비즈니스모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난 그것들을 공짜로, 아니 돈까지 받으면서 배운 것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했다.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일종의 공공재로 생각한다. 취업 비즈니스 시장이 무척 커졌고 앞으로도 커지겠지만, 학생 개개인들에게 취업 컨설팅을 이유로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을 그대로 당근마켓에 되파는 것같은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더 지속될 지 모르겠다. 현실은 관념속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으니까.
강의 등에서 간혹 필(feel)을 받으면 이메일을 알려준다. 진로 고민이나, 자소서를 봐달라는 메일을 받으면 일이 시작된다. 진로 고민은 주로 일회성 혹은 한 두번 메일을 주고받으면 마무리가 되는데, 자소서를 받으면 취업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기본이 3개월에서 6개월이다. 수많은 메일을 주고받고 합격했고, 고맙다는 메일을 받으면 한 건이 끝난다. 지금은 닫았지만, 2010년부터는 아예 홈페이지를 만들어 무료 컨설팅을 했다. 그래서 취업판에서는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취업판이 더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래서 외롭다.
올해부터는 취준생 대상 뉴스레터를 하나 시작해야겠다. 구독자 중에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뉴스레터 형식으로 모두에게 답변을 해주는 쌍방향 미디어를 생각하고 있다. 초라한 시도로 끝날지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해 보려 한다. 무료 뉴스레터는 오랜 생각에 딱 맞는 솔류션 같다. 돈은 어떻게 버냐고? 모른다. 하나는 안다. 돈은 집 나간 개와 같다. 잡으려고 쫓아갈수록 개는 더 멀리 도망간다. 때가 되면 집 나간 개는 제 발로 들어온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