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채용은 기회 요인이자 위험 요인이다. 이상한 인간을 채용하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채용의 이상적 목적은 우수한 인재(기업이 예상하는 혹은 예상을 뛰어 넘는)를 영입하는 것이지만 , 채용의 현실적 목적은 문제될만한 인간을 배제하는 일이다. '큰 거 바라지 않는다. 사고만 치지 말고 중간만 가라'라는 마음은 채용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10명을 채용했는데 모두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성공이다. 9명은 고만고만하고, 1명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면 능력을 인정 받는다.
조직의 채용 업무가 아웃소싱이 많이 된 요즘은 특히 그렇다. 내가 뽑아서 내가 부서 배치를 해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달려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인소싱 상황이면 채용에 더욱 신경을 쓴다.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뽑은 사람의 업무 수행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피드백 받는 것은 다음 번에 더 나은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중요하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성과가 있을 때, 고성과자와 저성과자의 특징과 채용 과정에서의 지원자 특징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반복적 피드백 루프를 통해 기업의 채용 문화와 기준이 만들어진다. 한 인간이 시행착오의 경험을 성찰해 점점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 과정을 단순화거나 무시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문제는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채용이 아웃소싱되는 주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제 3자가 진행하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여러 장단점이 있다. 요즘에는 구조화 면접이 대세다. 공정성과 편리함 때문이다. 웬만한 규모 있는 조직은 구조화 면접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같은 문제를 내는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서로 다른 지원자의 피드백으로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판단의 기준도 구조화되어 있다. 하지만 면접관의 판단, 즉 면접관의 뇌세포 시냅스 네트워크 연결 상태는 제각각 다르다. 주관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구조화된 질문과 판단기준으로 객관적 판단을 하도록 상세한 매뉴얼이 정해져 있어도 주관적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예컨대 의사소통능력을 1점에서 5점까지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면 몇 점을 줄 것인지는 면접관의 주관적 판단이라는 뜻이다. 구조화된 질문과 맞춤형 질문의 균형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 아니라 면접관 판단을 이끄는 사고와 논리다. 지원자의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채용은 원래 어렵고 고달픈 일이다. 서류전형을 하는 일이나, 면접관으로 참여해서 지원자와 인터뷰하며 채용 여부를 판단하는 일도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두 명 면접을 보면 그나마 할 만하겠지만, 하루에 수십 명 면접을 보는 일은 에너지가 금방 소진된다. 많은 인원을 면접 보고도 멀쩡하다면 면접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면접에서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원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행동을 눈 여겨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면접 중간 중간에 짬을 내어 성실히 서류를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는 뜻이다. 서류도 확인해야 하고, 면접도 진행해야 하고, 질문도 해야 하고, 대답을 듣고 또 질문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 행동과 감춰진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 여러 복합적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겉은 편안하고 따듯한 분위기, 속으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모의 면접은 그 와중에 지원자들 개개인들에게 피드백할 정보도 정리해야 한다. 면접관도 사람이라 힘들고 지쳐 집중력이 떨어진다. 종일 면접을 봐야 할 때는 정신력으로 버틴다. 버틴다는 것은 아무리 번아웃 지경이 되어도 끊임없이 서류에서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지원자에게 맞는 질문을 하며, 지원자의 대답과 행동 이면에 도도하게 흘러가는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진실이다. 채용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코 지원자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조직 문화, 기업 상황, 해당 직무, 오너의 철학 등 너무나 많은 나름의 판단의 기준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원자가 진실된 사람이냐 아니냐라 생각한다. 가식적인 지원자는 업무 수행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지원자이기 때문이다. 리스크는 많지만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원자보다 리스크가 적고 잠재력이 있는 지원자가 낫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작년, 한 금융기업의 HR을 책임지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돼지국밥을 한 그릇 했다. 채용을 한 참 진행하고 있다 했다. 자연스럽게 채용에 대한 생각을 서로 나누었다. 그 친구가 말하는 첫 번째로 탈락시키는 기준은 가식적 지원자라 했다. 거짓말 하는 지원자, 왜곡과 과장, 축소를 당연하게 여기는 지원자, 번드드르한 포장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지원자들이다. 그 기업이 특별히 인적 리스크에 된통 탕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보편적 진리다. 좋은 지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과장하고 왜곡한 번지르르한 자기PR만 연기하듯 열심히 했는데도 합격했다고? 그건 대부분 그렇기 때문에 그 중에 좀 나은 지원자를 뽑은 것이다. 꿩대신 닭이고, 닭 중에서도 그나마 뀡과 닮은 닭을 선택한 것이다. 모두가 닭인 세상에서 꿩이 되면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 시작은 스스로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진실과 심각함은 다르다. 진실한 사람도 얼마든지 유쾌하고 즐겁게 다이나믹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 삶의 진실,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재미있게 탐구하는 학생, 취준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게 취업 준비의 시작이다. 그 마음으로 자소서도 쓰고, 인터뷰도 하는 것이다. 기업의 관심사는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도대체 이 지원자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