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에서 좋은 조건에 업무 공간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어서 지원했다. 경쟁률이 치열해서 애초부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어제 오전에 PT를 했다. 진행자의 파일을 얼핏 보니, 경쟁률이 15대 1은 되어 보였다.
발표는 잘했다. 전문성, 열정, 추진력을 잘 보여주었다. 질문도 많이 받았다. 다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하나가 걸렸다. 돈이었다. 구체적 수익 모델과 재정 자립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재정 계획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맞는 말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반성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돈을 버는 것에도 쓰는 것에도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돈 벌 생각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타인에게도 그렇게 말하는 것,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고상한 인생이라 여겼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가난이 부끄러워 돈과 거리를 두는 삶을 나도 모르게 선택했나 보다. 돈을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다치니까. 고등학교쯤 되어서는 돈을 벌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은 돈과 화해한 것이라 믿었다. 그런 상태로 먹고, 자고, 입고, 뭔가를 사며 오랜 세월 보냈다. 돈이 술술 들어왔던 시절에는 자발적 가난에 경도되어 있어 돈을 우습게 보며 더 거리를 뒀다.
돈에 대한 이해는 4년 전부터 시작했다. 금융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은 것이 계기다. 돈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으나, 오랜 세월 이끼처럼 쌓인 습관과 행동은 여전하다. 그 부끄러움이 어제 PT를 하다가 드러난 것이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재정 계획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냐?가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며 구체적 계획을 세워봐야 그 과정에서 생각하는 것을 실현할 힘이 길러지는 것이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나 진정성만 있으면 다 된다는 생각이나, 로또만 당첨되면 다 된다는 생각은 본질이 똑같다.
바뀌기로 했다. 마음을 담아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그 합당한 대가를 받기로. 1+1=2처럼 너무나 당연한 걸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도움을 준 대가로 받은 돈을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쓰고, 그걸로 얻은 많은 대가를 또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쓰는 과정이 반복된 것이 성장하는 사업 모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재정 계획 수립도 쉽고, 돈 벌기도 참 쉽다. 돈을 벌려면 타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고, 번 돈 또한 타인을 위해 써야 한다. 그게 지속적으로 돈 버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