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모르는 개념이나 처음 겪는 경험은 인간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길 수 있다.
어린 아이는 죽음이나 이별을 잘 모른다. 다음에 또 볼 수 있는 헤어짐은 이별이 아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헤어짐이 이별이다. 죽음이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이다.
죽음과 이별을 대해 어릴 적 처음으로 생각하고 경험했던 때가 아직 생생하다.
6살 무렵 벗어둔 내 신발을 쳐다보다가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낯선 개념에 소용돌이처럼 빠져 들었다. '내 속에 내가 있어 나와 세상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데 그런 내가 사라지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없다는 것은 저 신지 않은 빈 신발 같은 모습인가?'와 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어제 찍은 사진처럼 아직 그 장면과 느낌이 뚜렷하다.
7살 무렵 먼 친척이 군대 휴가를 나와 집에 하루를 머물렀다. 그 분은 이틀 동안 나와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다음 날 헤어질 때 나는 처음으로 헤어짐의 슬픔을 느꼈다. 군대라는 다시 못 오는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영원한 이별로 여겨졌다. 가눌 수 없는 슬픔에 가까이 가서 인사도 못하고, 잘 가라는 말도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 그 날 이후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별과 죽음의 문제는 아직 풀지 못했다. 죽을 때쯤 되어야 풀 수 있을지, 죽어도 풀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죽음과 이별에 대해 물어오면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 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여전히 그 문제를 모르지만 비유적으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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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헤어짐은 선물이란다.
때가 되면 받는 산타클로스의 선물 같은 것이란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우린 아직 알 수 없단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받아봐야 아는 것이란다.
어떤 선물은 처음엔 마음에 안 들다가 점점 좋아지기도 하고,
어떤 선물은 너무나 소중했다가 점점 잊히기도 한단다.
친하고 가까운 사람의 헤어짐일수록 더 큰 선물이란다.
길든 짧든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면 멋진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단다.
물론 다투어도 선물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이야,
사는 건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란다.
함께 지내는 동안 주고받은 선물에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 그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단다
영영 헤어진 사람에게도 선물을 줄 수 있단다.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도 너에게 선물을 보내준단다.
생각할 때마다 루돌프의 썰매에 선물을 실어 보내준단다.
하지만 그게 어떤 선물일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단다.
언젠가 받을 선물을 두려워할 필요도, 애써 기다릴 필요도 없단다.
선물만 생각하는 아이에겐 산타할아버지는 좋은 선물을 주지 않으니까.
아이야,
행복하여지려면 선물을 줄 줄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단다.
받을 선물이, 줄 선물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모른단다.
받은 선물이, 준 선물이 앞으로 얼마나 멋진 선물이 될 지도 우리는 모른단다.
아이야,
헤어짐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란다.
헤어짐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그게 어떤 선물일지는 헤어지기 전의 시간에 달려 있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든 도와주는 사람일수록 큰 선물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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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하늘 공원에 가족들과 함께 가는 날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죽음에 대해 물어오며, 자신은 헤어지는 것도 죽는 것도 싫다고 말하면 대답할 때 참고해야겠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영원히 헤어진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배우고 깨닫는다. 그게 그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내가 죽을 때, 그 동안 받은 선물들을 보태서 크게 돌려주기 위해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