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옹책방 Feb 02. 2023

픽션


아침, 우연히 노암 촘스키의 최근 얼굴을 보았다. 한 때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몇 권 샀던 다른 책들은 사라지고 '촘스키 사상의 향연'이라는 두꺼운 책 하나만 책장에 꽂혀 있다. 


촘스키는 무척 늙었다. 90살이 넘었다. 얼굴을 보니 늙었다기보다 빛이 꺼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톨스토이.


촘스키는 늙어서도 논픽션을 말하고, 톨스토이는 나이 들면서 픽션을 말했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팩션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톨스토이는 현실 세계의 엄밀한 팩트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촘스키는 빛이 꺼져가는데도 아직도 팩트 자체를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어느 시대든 노인의 지혜는 필요하겠지만, 저마다 지식과 통찰을 숨 쉬듯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노인의 예리한 분석은 무척 힘든 일 같다.


촘스키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배울 것이 있겠으나, 그와 톨스토이를 생각하며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생각해 본다. 


인간의 삶을 아이-어른의 두 단계로 구분하면, 그 살아가는 세계는 픽션-논픽션으로 구분될 것 같다. 상상력이 넘치고 사고가 몰랑몰랑한 아이 때는 무엇이든 신기하고, 즐겁고, 사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픽션의 세계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빛이 바래고 호기심, 재미가 줄어든다. 책임과 의무로 살아가는 논픽션의 세계다. 논픽션의 세계에서 살아남고 인정받으려면 끊임없이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꾸듯 젊은이의 뇌 상태를 유지하며 학습해야 한다. 논픽션의 세계에서는 사실 여부를 따져야 하고, 눈치를 봐야 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 반면 픽션의 세계에서는 숨 쉬고 생각만 할 수 있다면 깔깔거리며 나름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글을 예로 들면, 60살 정도까지는 논픽션을 쓰고, 그 이후부터는 픽션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과도기에는 팩션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 은퇴 후에 조용한 곳에 가서 유유자적하고 싶은 마음도 논픽션의 세계에서 픽션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 아닐까? 


인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이-어른-다시 아이가 된다 하듯. 하는 일도 픽션-논픽션-다시 픽션이 되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 노인이 말하는 픽션은 나름의 팩트와 유효한 통찰과 지혜가 담겨 있을 테니. 그런 노인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다. 그때까지 살아있기를 바랄 뿐.

매거진의 이전글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