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에게 군대란 무얼까? 청춘이라는 꽃봉오리를 시들게 만드는 어두운 터널 같은 것일까? 그럼에도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군대 시절 이야기를 곧잘 하는 건, 그때가 좋아서라기보다 에너지 왕성했던 찬란한 젊음에 대한 그리움 때문 아닐까?
난 몸이 힘든 군대 시절을 보냈다. 1년 중 8개월 이상을 험준한 강원도 민통선 북쪽 산 속에서 행군하고 작업을 해야 했다. 첫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한 이등병 고참이 양말을 벗어 자신의 발가락을 보여주었다. 2주 행군을 하고 난 뒤 발톱 7개가 빠지고, 3개만 남았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군화가 발에 맞지 않은 듯 했다.
병장부터 이등병까지 모두가 몸이 힘들었다. 민통선 산 속에서 짐승처럼 지내는 것이 일상이라, 무엇을 하든 서로 돕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고 다발사단이었는데 지뢰, 총기 사고, 자살 등으로 평균 한 달에 한 명이 죽었다. 죽거나 다치지 않게 서로 돕다 보니 전우애라는 것이 생겼다.
21사단 65연대 5993부대 1대대(기억이 가물) 3소대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30년이 지난 아직도 모임을 한다. 난 10여년 정도 연락이 끊겼는데, 최근 연락이 왔다. 이등병 때 3개 남은 발가락을 보여주었던 그 사람이 모임을 주도한다.
어제 군대 모임을 주도하는 그 고참과 10여년 만에 통화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는 소대원들의 행방을 찾고 연락처를 구하는데 정말로 진심이다. 어느 정도인가하면, 제대 직후 모임을 하려고 한 고참의 집에 전화를 하니 아버지가 받았고, 아들의 연락처는 물론 어디서 무엇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한다. 추측컨대 아들이 학생운동을 한 것 같고, 군대 후임이라 말해도 형사로 여겼던 것 같다.
발가락 3개 고참은 그 집에 무려 30년 동안 전화를 했단다. 물론 매일은 아니고, 잊힐만 하면 전화를 했다. 그리고 최근 그 드디어 그 고참의 전화번호를 알아 내었다 한다. 아버지도 늙고, 세상도 바뀌었다 생각했는지 아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한다.
그 고참은 사실 내가 무척이나 보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배치 받은 화기분대의 분대장이었다. 참 잘생기고 생각과 태도가 반듯했다. 엄청 고참이기도 하고 살가운 성격은 아니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군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어디서 뭐하고 있냐고 발가락 고참에게 물어보니 대학로에서 연극 연출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다. 전화를 끊고 찾아 보니 옛 얼굴이 보인다. 참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공감이 많이 된다. 만나고 싶다. 만나서 군대 이야기, 연극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 얼굴 속에서 30년 전 나를 기억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군대 모임을 30년 동안 꾸준히 주도하는 그도 자랑스럽고, 그가 30년만에 찾은 고참도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