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마음을 담아 가장 열심히 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환경 교육이다.
그 무엇도 바란 것 없이 오로지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생태 철학으로 석사 논문을 쓸 때 환경교육을 시작했다.
그럴듯한 논문 하나 쓰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된 환경 교육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고 좋다는 소문이 퍼져 환경 교육법을 교육하느라 전국을 바쁘게 다녔다.
각종 토론에서 환경 교육을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혔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들과 손잡고, 그들 속에 속해야 더 큰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았다. 침묵하거나 동조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더 잘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환경 교육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환경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따로 하는 걸 반대한다.
아이들에게 정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억지로 이식하는 것은 어리석다.
일상의 삶의 통해서 자연스레 아이의 정신이 여물며 자라기 때문이다.
환경 교육도 똑같은 접근을 해야 한다 믿는다.
입시 교육이 따로 있고, 인문학 교육이 따로 있고, 인성 교육이 따로 있고,
취업 교육이 따로 있고, 진로 교육이 따로 있고, 역량 교육이 따로 있고,
환경 교육이 따로 있다는 것은 교육이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도기에는 환경 교육을 따로 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교육 속에 환경 교육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믿었다.
환경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만들어 한 자리 해먹고 이득을 취하려는 행태가 너무 뻔히 보여서 화를 많이 내었다. 환경 교육이라는 주제로 모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환경 교육을 해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뭔가 영향력있고 근사한 조직을 만들까만 고민했다. 그것이 내 분노의 진원지였다.
그때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지금은 문제 제기와 비판보다는 문제 해결 위주로 말하려 한다.
문제를 해결할 멋진 대안이 쑥쑥 나오지 않으니 말이 줄어든다.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사람, 함께 일을 도모했던 사람, 교육, 토론회 등에서 만났던 사람 대부분이 환경 교육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환경 교육을 하는지, 환경 교육을 팔아먹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10년에 환경 교육판과 결별했다. 인생은 돌고 도나 보다.
올해 5월, 환경 교육을 다시 한다.
앞으로는 덤성덤성, 오래오래 할 것 같다.
나는 환경 교육을 하는 사람인지, 환경 교육을 팔아먹는 사람인지 돌아봐야겠다.
그 동안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돌아봐야겠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