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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Mar 24. 2023

낙엽

살아 있는 것들은 환경이 열악하면 움츠리고, 환경이 좋으면 확장한다. 겨울이 되면 식물은 살기 위해 잎을 떨어뜨린다. 낙엽수가 가을에 잎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햇볕의 양이 적고 추운 환경에서 잎을 통해 광합성으로 얻는 에너지보다 잎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많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유지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많으면 차를 파는 것과 같은 원리다.


침엽수는 겨울이 되어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봄에 다시 잎을 피워내는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봄이 올 때까지 잎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적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동차를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나중에 차가 필요할 때 새로 구입하는 비용이 훨씬 크다 판단되면 차를 팔지 않는 것과 같다. 봄을 기다리는 소나무는 가늘고 뾰족한 잎에 최소한의 영양분을 공급하며 겨울을 버틴다.


식물은 가지를 뻗고 잎을 만들어 확장할 때와 잎을 떨어뜨려 성장을 멈춰야 할 때는 안다. 상황이 좋으면 로마 제국처럼 에너지를 가능한한 뿌리와 먼 곳까지 보내며 확장에 주력한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마사다 최후 항전처럼 남은 에너지를 뿌리로 보내 생존을 위해 버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낯선 무언가와 맞닥뜨리면 에너지 관점으로 판단한다. 적과 싸우는데 드는 엄청난 에너지, 적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데 드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아끼는 전략이 도망이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 느끼는 것은 에너지를 아껴 생명을 잘 돌보려는 본능이다. 부정적 정보, 소모적 정보를 피하고 싶은 마음, 똥을 피하려는 마음에는 에너지를 아껴 생존하려는 낙엽의 원리가 담겼다.


크고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도 에너지 관점에서 바라보면 쉽고 단순해진다. 관심이 가는 많은 것들, 이루고 싶은 많은 것들, 좋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 해야 하는 모든 것들에 다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어떤 것은 포기하고, 미루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영양분을 공급해서 유지해야 할 낙엽과 떨어뜨려야 할 낙엽을 선택해야 한다.


공부든, 사업이든, 진로든, 취미든 저마다의 에너지 공급 지도에 따라서 인간의 다양성이 생성된다. 자연스런 관심과 흥미에 따라 다양한 직업이 만들어지는 것, 특정 분야에 재미를 느끼는 힘으로 다른 분야로 관심을 확장하는 원리도 에너지 관점으로 보면 명확해진다. 이것저것 일도 많고 몸과 마음이 바쁜데 성과없이 피곤하다면 에너지를 잘못 쓰고 있다는 뜻이다.


피곤함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신호다. 에너지 사용에 문제가 있으니 에너지를 잘 사용하라는 오랜 진화의 결과로 말해주는 묵직한 공짜 조언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도 피곤하지 않다면 환경이 좋다는 뜻이다. 그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확장하는 것이 좋다.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는데도 피곤하다면 환경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이때는 에너지를 뿌리로 돌려야 한다.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노력만으로는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겨울에 잎을 활짝 피우고 여름에 잎을 떨어뜨려 되는 일이 없다고 절망하면 안 된다. 밀가루, 물, 소금, 설탕, 이스트만 있다고, 열심히 반죽하고 발효를 시킨다고 빵이 되지 않는다. 적절한 온도로 구울 수 있는 환경과 만나야 한다. 빵을 구울 수 있는 환경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지만, 맛있는 인생을 구울 수 있는 전체 환경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기 힘들다. 그러니 좋은 때를 만나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이 잘난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만 믿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삶과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역시 잘못이다.


일이 잘 될 때나 잘 되지 않을 때, 자신의 탓도 세상탓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겨울이 오면 뿌리에 에너지를 모으며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여름이 되면 잎에 에너지를 보내며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면 좋겠다. 성공한 오만한 인간을 선망하며 모멸감과 자괴감으로 살아가는 실패한 사람을 키우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일, 공부, 일상에서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학생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 세상을 똥으로 만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똥과 싸워 이겨라고 강요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책임을 다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자신의 시간이 왔음에도 남탓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 삶도 역시 피곤해서일까? 이기적 탐욕때문일까?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까닭을 생각하면 좋겠다. 누군가를 돕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자신을 돕기 위함이다. 동물은 식물을 먹으며 씨를 멀리 퍼뜨린다. 당장의 작은 이익보다 미래의 큰 이익,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 소수의 이익보다 더 많은 이들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그래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그게 에너지를 잘 쓰는 방법이다. 식물보다 못한 인간이 될까 두려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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