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타인터뷰 Mar 31. 2023

광주


부산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광주를 생각하며 자랐다. 항상은 아니고 가끔 혹은 자주. 광주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서울서 대학 다니던 12살 많은 형을 통해서였다. 그때가 1980년 여름, 내 나이 10살 때다.


9살, 10살 시절에 부산 거리에서 탱크를 보았다. 부마 사태였다.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광주 시민들의 운명이 부산 시민들의 운명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걸  알았다. 분노, 아픔, 미안함이 뒤섞인 부채 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게 광주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무엇, 감춰진 진실이었다. 재수 시절 스승의 날, 무작정 전라도행 시외버스를 탔다. 벌교에 내려 소화다리 밑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전라도 땅을 밟고 남도의 공기를 마신 첫 경험이었다.


회사 다닐 때 동서화합 어쩌고 저쩌고 하는 행사에 기업 대표로 처음 광주에 갔다. 5.18묘역을 갔고, 대절 버스로 광주 시내를 다니는 내내 광주 경찰 사이카들이 앞장서서 안내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정이 참 많다 느꼈다.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던 30대 말 시절에 광주에 자주 갔다. 고추장 조기 정식을 좋아했다. 나를 좋아하며 자주 불러주던 한 대학에서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교수들과 반주를 했다. 5.18광주의 역사에 대해 지금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대답은 싱거웠다.


오늘 점심은 모밀 국수를 먹었다. 국수를 먹으며 뉴스를 보았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광주에 간 뉴스였다. 5.18관계자들을 만나 엎드려 사죄하는 모습, 여기까지 오기 전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걱정해주는 광주의 어머니들, 손잡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는 모습을 보았다.


눈물이 났다. 많이 났다. 껌뻑거리기를 포기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모밀 국수를 먹었다. 미움, 분노, 회피, 외면, 고립, 거짓보다 대면, 직시, 용기, 이해, 포용, 소통, 진실의 위대한 힘을 보았다.


관광으로  제주를   갔다가, 퇴직하고     제주가 다시 보였다. 제주는 아름다웠다. 5월의 봄날 검은 돌담 너머의 초록색 보리밭과  멀리 푸른 바다의 풍경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조금 알게 되니, 시리도록 아름다운 것이 이런 것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인간다울  가장 아름답다. 오늘 그런 뉴스를 보았다.


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내일은 가족들과 영원히 잠든 부모가 있는 곳으로 가는 날이다.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은 4월의 첫 날이다. 아버지는 벚꽃 피는 계절에, 평생 밥을 챙기던 엄마는 이팝나무 꽃 피는 5월에 돌아가셨다. 아름다운 계절이 되면 마음이 시리다. 시린 마음의 정체는 현실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길을 아직 찾지 못한 탓이다. 산 자의 생각은 자꾸 막히니, 죽은 자의 삶을 통해 길을 찾아야겠다.


시리게 아름다운 3월의 마지막 날이다.


광주를 찾은 27살 청년에게도, 그 청년을 다독이던 한 많은 늙은이에게도 시리도록 아름다운 날로 기억되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낙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