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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Apr 06. 2023

노출


네팔 인도 여행 3개월 동안 느낀 것 하나만 꼽으라면 ‘노출’이다. 정보라 부르든 데이터라 부르든 삶의 과정에서 접하는 것들에 태그를 붙인다. 태그의 속성은 결국 두 가지로 수렴된다. 좋음과 싫음이다. 현대 문명은 좋은 것(좋다고 여기는 것)은 드러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감추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변기 속 물체, 세면대와 씽크대로 들어가는 물, 가난, 좌절, 공부 못함, 번듯하지 못한 직업, 똑똑하지 못함, 무능력, 사회적 비인정, 도살장, 쓰레기처럼 좋아하지 않음 혹은 싫음이라는 태그가 붙은 것들을 무시하고, 감추고, 피하고, 혐오한다.


2000년대 중반 내가 본 인도는 있는 그대로가 드러난 곳이었다. 도시든 시골이든 주거지 외곽에는 곳곳에 쓰레기더미들이 보였다. 쓰레기 없는 개천은 없었다. 어떤 쓰레기인지 찬찬히 뜯어보면 산업화의 결과물, 공장에서 만든 물건, 한 때 필요해서 돈을 주고 구입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똥. 일상과 거리 곳곳에서 똥과 만났다. 기차 타기전에 소똥을 밟고는 콘크리트 바닥에 박박 문질러 지우고 기차를 타기도 했다. 바라나시에 원주민 소가 싼 똥이었는데,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인도와 네팔에서 만난 똥은 두 가지다. 동물의 똥과 나의 똥이다. 다른 사람들의 똥은 멀리서만 보았지만, 동물 똥과 나의 똥은 코앞에서 만나고 만지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네팔 오지 마을에 머물 때는 도배대신 소똥을 벽에 발라 놓았고, 소똥을 밀가루 반죽처럼 뭉쳐 식탁 행주로 쓰기도 했다. 그곳에서 똥의 지위는 밥 못지 않았다. 똥의 재료가 밥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동물의 똥은 귀하게 여기는반면 사람의 똥은 더렵게 여겼다. 


오지 주민들의 집, 도시의 싼 숙소, 거리의 공공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는 손에 물을 묻혀 똥이 끊어진 자리를 닦았다. 손바닥에 담긴 물을 엉덩이 쪽으로 옮기면 관절의 각도 때문에 물이 줄줄 흘러버려 물로 똥을 씻는 것인지, 물기 있는 손으로 똥을 닦는 것인지 항상 헷갈렸다. 호스에 노즐이 담겨 쏴하고 물이 뿜어져 나오는 재래식 비데는 내게는 고급 화장실이었다. 손에 똥을 묻히지 않는 고급스런 여행을 항상 할 수는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그렇게 싫던 한국 사회가 편하고 좋았다. 거리의 소음조차 침묵 혹은 새의 노래처럼 느껴졌고, 사회는 단정히 정돈되어 있었다. 똥과 쓰레기 같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혐오스러운 것은 볼 수 없었다. 그때쯤 알았다. 한국같은 잘 사는 나라에는 똥과 쓰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감춰 놓은 것이라는 걸. 오히려 더 많다는 걸. 네팔 인도같은 나라는 똥과 쓰레기가 유독 많은 것이 아니라, 단지 감추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똥과 쓰레기가 있다. 노출된 것과 감춰진 것.

거리에 버려진 일상의 쓰레기와 똥, 하수구와 정화조, 소각장과 매립장에서 기술적 처분을 기다리는 똥과 쓰레기 중 무엇이 더 더럽고 혐오스러울까? 갓 죽은 동물의 사체보다, 썩어 문들어진 동물의 사체가 더 보기가 힘들 듯, 삶에서 멀어진 시간이 쌓인 똥과 쓰레기가 대면하기 힘들 것 같다.


발전, 개선, 세련됨, 더 행복한 삶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현장에서 감춰지고 멀어진 것은 똥과 쓰레기뿐 아니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학생들과 어른들의 삶, 타인의 관심과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 것들도 똑같다. 좌절, 무기력, 우울의 근원은 판매할 수 없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는 마음일지 모른다. 세상의 평화는 똥과 쓰레기를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과 동급으로 여기는 통찰로부터 싹튼다. 그러면 경제는 망할까? 다른 방식으로 번영할까? 경제가 살고 인간이 죽어가는 삶보다, 경제가 죽더라도 인간은 행복한 삶이 더 나을 것 같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경제는 관념적이다. 직접 대면한 적 없는 도살장, 소각장, 쓰레기매립장, 하수종말처리장 같다.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일상과 너무 먼 곳에 있다. 모든 인간은 얼마 뒤 화장장의 재가 될 운명이다. 언제간 다가올 죽음이나 언젠가 이루게 번영은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다. 멀리 있는 것, 드러난 것에 관심을 빼앗기는 삶을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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