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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Mar 26. 2023

사업


힘들게 자영업을 하던 부모님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사업'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대학교 초입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다. 떡볶이가 가장 많이 팔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를 구해 연구하듯 정성껏 맛있게 떡볶이를 만들었다. 가장 좋은 고춧가루, 가장 좋은 쌀, 가장 좋은 깨, 가장 좋은 소금과 설탕을 고집했다. 음식은 물이 중요하다며 물통을 지고 새벽 4시에 약수물을 기르러 왕복 2시간이 넘는 산행을 매일 했다. 떡볶이를 팔아 자식 4명 대학 공부를 시켰으니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는 뜻이다. 식당이 성장할 무렵 오랜 월세로 있던 곳에서 쫓겨났다. 오래 일궈온 삶의 터전을 잃은 아버지는 경비, 청소부, 정원사 등의 일을 전전했다.


장사하는 사람의 선의와 양심을 지키며 힘겨운 일상을 분투하며 보내는 가난한 부모를 보며 나는 저렇게 힘들고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나뿐 아니다. 누나와 형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사업과 완전히 담을 쌓은 인생이 되었다.


나는 오래 동안 비즈니스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돈을 벌려면 적당히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적당히 타인을 속이며 적당히 권력과 결탁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적당함이 누군가에게는 상식이겠지만, 착한 부모의 삶이 투영된 내게는 불의였다. 그래서 내게 비즈니스라는 단어는 아마존 원주민에게 페라리같은 낯선 무엇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업 같은 과목이 가장 재미없었던 이유, 상경대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이유, 기업 경영지원 부서에서 일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이유가 어릴 적 아버지의 떡복이의 추억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평생 크든 작든 사업이라는 단어를 무시 혹은 경멸의 마음으로 대한 것 같다.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도시에 살면서 돈을 버는 행위를 싫어하는 자기 모순의 삶이었다.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 몇 년전부터다. 비즈니스는 아름다운 행위다.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제공하고 적당한 댓가를 받는 것. 이타적 행위로 이기적 목적을 이루는 것. 타인의 나은 삶에 기여한 댓가로 내 삶이 나아지는 것. 세상에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개념이 또 있을까 싶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댓가로 돈을 버는 원리.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원리다. 도움을 주지 않는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포장하고 왜곡하는 것,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마케팅으로 도움이 된다 믿게 만드는 것. 선택의 여지가 없게 시스템을 바꾸는 것과 같은 행위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사업가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다. 기업가의 이윤이란 선의와 양심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준 자연스러운 댓가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은 정치권력과 기업권력이 결탁한 정실자본주의라고 폭로했다. 1971년에 미국의 기업가들은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화학적으로 결합해 법률을 기업 비즈니스를 위한 도구로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했단다. 예를 들면 그가 1970년대 중반에 연방 통상 위원회에서 일할때 어린이들의 건강에 나쁜 식품의 TV광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려고 했는데, 기업의 로비로 연방 통상 위원회의 예산이 끊겨버렸단다. 라이스의 표현에 따르면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것처럼 기업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정계와 재계가 결탁하여 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실자본주의는 대락 그때쯤 탄생한 듯 하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의 정부는 기업이 성장하도록 하는 걸 정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GDP, 낙수효과, 파이 키우기, 법인세, 일자리, 산업 육성, 미래 먹거리 등 익숙한 키워드의 진원지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와 지원이 정치의 중요한 이슈인데, 그 목적이 다수 국민을 위한 것인지, 기업을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지금 한국의 복잡한 현상이 명료해진다.


사업을 하지 않고, 정치를 하는 기업이 많다. 돈을 쉽게 벌고 싶기 때문이다. 사업을 통해 돈을 벌려면 원인과 결과로 나눠 봐야 한다. 돈을 버는 원인을 만드는 일이 먼저다. 돈 버는 일이란 더 많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윤이라는 결과는 도움에 대한 적당한 댓가다. 대중을 위한 사업을 하지 않고, 이윤을 위한 사업을 하니 다수 국민은 점점 힘들어지고, 상위 1%는 점점 부유해진다. 왜곡된 비즈니스의 개념 때문이다. 자기이익,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타인이익, 다수이익, 이윤배분의 비즈니스가 필요하다. 선의와 양심에 기반한 아름다운 사업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붕괴할 것 같다. 곧.


아이들이,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뭔가를 하는 이들이 그들의 일을 생각하며 설레길 바란다. 자신이 관여한 사업이,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고, 더 나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에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가르치면 좋겠다. 아니,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학생 스스로 관심가지고 서로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교육이란 그런 내외적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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