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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May 16. 2023

취업교육의 추억

나는 기업에서 일할 때 채용 업무를 주로 했다. 주로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채용 후 부서배치 면담을 하고 각 부서에 발령을 내린 후 수습평가를 하고 면수습 이후 징계, 포상, 승진급 퇴직 면담, 퇴직 처리까지 했기 때문이다. 보훈대상자, 장애인고용부담금 등의 간혹 발생하는 업무도 내 담당이었다. 일년에 두어번 정부기관의 요청에 따라 채용계획 인원을 알려주는 일도 했다.


일년에 800명에서 1000명 정도를 채용했다. 매년 몇 만장의 자소서를 보았고(읽었다는 표현보다는 보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고민하며 쓴 자소서를 보며 어떤 지원자인지 파악하는데 평균 4초에서 10초 사이면 충분했으니까), 매년 최소 2000~3000명의 면접을 보았다. 그때는 채용공고를 할 때 대기업도 전화번호를 기재하던 마지막 시대라 낮에는 채용 문의 전화를 받느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전화 응대 전담 인원을 뽑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은 내가 통화를 해야했기 때문에 특이한 가치관을 가진 외계인의 침공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어쨌든 무지막지하게 채용 일을 하다가 퇴직했고, 회사 밖 사회는 나를 단번에 최고의 취업 전문가 대우를 해 주었다. 취업이 무엇인지, 채용이 무엇인지, 자소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면접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와 같은 특강과 코칭을 했다.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돈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10년 정도 왠만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모든 이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취업 교육은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돈을 많이 받았다. 2시간 기준 특강에 50만원에서 80만원을 받았고, 일대일 코칭을 주로 하는 취업캠프를 다녀오면 통장에 250만원 정도가 입금되었다. 한 달에 10일에서 보름만 일하고 1천만원씩 벌던 시대였다.


쉬운 인생을 산 탓인지, 돈이 된다고 무엇이든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환경 교육이었다. 그때 환경 교육은 1시간 기준 보통 8만원에서 10만원을 받았다. 시간당 20,30만원을 받는 취업 교육과 비교하면 환경교육은 자원 봉사였다. 차로 2~3시간씩 운전해서 다른 지역에 가서 환경 교육을 하고 밥도 사먹고, 때로는 숙박도 하며 8만원~20만원(2시간 이상)을 받으며 계산기를 두드리면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환경 교육을 하기 위해서 취업 교육을 하는 삶을 살았다. 돈은 취업판에서 많이 버니까, 돈에 대한 생각없이 환경 교육을 실컷 할 수 있었다.(부르면 어떤 조건이든 어디든 갔다.)


취업 교육이 싫었던 이유는 ‘일단 취업’이라는 학생(취준생)들의 맹목적 태도 때문이었다. 진짜 문제는 취업 이후다. 나는 취준생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은데, 그건 내 역할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일단 공부, 일단 대학이라는 삶을 살았으면 그런 태도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만도 한데,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유는 마비가 된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며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은 안다. 취업을 하고 창업을 하는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이 3막의 연극이라면 1막만 생각하고 그 다음은 모르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 나는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야 취업을 잘할 수 있는 자소서를 쓰고, 면접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당장 근사한 자소서를 쓰고 합격하는 면접의 비법 같은 것을 원했다. 취준생이 매혹적인 인스턴트 결과물을 원할수록 그들의 취업 문제와 삶은 꼬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 또한 수요 맞춤의 일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댓가가 돈이었다. 그런 삶이 자기 모순의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인생을 걸고 진짜 중요한 , 진짜 필요한 것을 진실하게 말해줘야 하는데, 시장이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적당히 포장해서  신념을 상품화하는 일이 못마땅했다. 그렇게 10년을 살다가 그만 두었다. 8년을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으로, 여행자로 살다가 다시 취업판에 관심을 두었다. 과거의 내가 비겁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 생각 다르다는 이유로 현실로부터 등돌린 심약한 어린 아이같은 태도로   같았다. 호수를 메우고 싶은 꿈을 가진 이가 호수에 달랑  하나 던져보고  된다 판단하고, 호수를 떠난  같았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잊혀진 존재였고, 취업 교육 단가는 시간당 5만원에서 10만원 수준이다. 채용이 많지 않은, 채용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모두 취업 전문가라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두어 곳 합격한 취준생들도 자소서와 면접의 전문가 행세를 한다. CS강사, 방송인, 글작가, 평범한 직장인, 책 몇 권 읽은 사람, 모두가 취업 전문가다. 모두들 각자의 신념을 퍼뜨린다. 모두 들으면 그럴듯한 말이다. ChatGPT의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처럼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다 그럴듯하다. 그런 그럴듯함 때문에 누군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누군가는 돈을 번다. 그렇게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그럴듯한 정보를 머리에 넣으며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보를 해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어떤 직업이든 일의 시작과 끝은 정보 해석능력이다. 통찰적 해석 능력이 있어야 유용한 정보,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 내가 생산한 정보가 자소서든, 면접의 말이든, 보고서든, 사업 계획이든, 텍스트와 말, 행위로 보여주는 매일매일의 일이든 똑같다.


그럴듯함이 판치는 시대에는 그럴듯한 숱한 정보들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 특정 영역의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경험과 지식의 유무보다는 지혜와 통찰의 유무가 중요하다. 채용 경험이 있어도 엉터리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채용 경험이 전혀 없어도 제대로 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된 사유다.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 끝없이 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 유유자적하는 일상의 삶이든, 치열한 사업의 세계든 똑같다.


세상이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분노, 회피, 무기력에 빠지는 건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나와 세상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쓸모가 생긴다. 나를 존재케하는 것은 나와 다른 존재 덕분이다. 다름 때문에 생각이 싹트고, 할 일이 생기고, 직업이 생긴다. 그러니 다르다는 이유로 미움과 혐오의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다.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유념해야 한다. 정치인뿐 아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일이다. 문제해결이란 다름과의 소통이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멱살을 쥐어서라도 서로 다른 것을 마주 앉혀 이야기를 나누게 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직무 역량의 본질이다. 직무 역량뿐이랴, 살아가는 힘이기도 하다.


국내 2위 취업교육기업과 함께 일하기로 했다. 취준생들을 코칭해주기로 했다. 돈 때문이 아니다. 수영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근사한 폼으로 수영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사람은 일단 물에 몸을 담궈야 한다. 몸에 감기는 차갑고 낯선 물의 감촉을 회피하는 자는 결코 수영을 배울 수도, 수영에 대해 말할 수도 없다. 수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는 오늘 수영을 한 자 뿐이다. 과거에 수영을 좀 해보았다고 떠벌리면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그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중요치 않다. 형편없는만큼 나아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쉽게 포기하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담그고 뭐라도 하는 삶.

그게 아름다운 삶이다. 얼마나 앞으로 나갔는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얼마나 물을 제대로 느꼈는가다.

제대로의 비밀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럼 점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더 제대로 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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