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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May 24. 2023

일의 원리

떨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상반된 두 개념과 만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인 경우 반가움과 당혹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인 경우 기피감과 당혹감이다. 당혹감의 정체는 만남의 내용이 내 생각과 다르게 펼쳐짐이다. 반가운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어릴 때 이야기를 하면 수다를 떠는 것은 반가움이다. 무엇과의 반가움인가? 내 안의 오래된 기억, 아름답고 애절하고 순수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기쁨으로 만들어진 반가움이다. 동창과 이야기를 더 나누다보면 종종 당혹감이 생긴다. 서로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했지만 서로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은 누구나 한다. 초등학교 동창회뿐 아니다. 가족, 친구끼리도 기억의 상이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싸우기도 한다. 갈등의 원인은 해석만이 아니다. 기억의 다름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내가 언제 그랬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라는 말은 다툴 때 가장 많이 내뱉는 말 중 하나다. 


서로 다른 기억과 해석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고통 혹은 기쁨이다. 내 생각과 기억이 맞으니까 상대의 생각과 기억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고통이다. 나처럼 상대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소중하듯 상대의 기억도 소중하다. 분명한 것은 기억은 객관적 팩트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뇌가 임의로 재구성한 정보일뿐이라는 사실이다. 한 대상에 대해서 이렇듯 다양한 기억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양한 관점과 기억, 생각을 알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즐거움이 된다. 낯섦과 다름에 대한 이런 대표적 접근이 여행의 경험이다. 여행을 하며 문화와 사고방식 등 다름에 대해 틀렸다는 관점을 가지면 고통의 시간, 다름을 이해하고 배우겠다는 관점을 가지면 기쁨의 시간이 된다. 기억이 다른 동창을 만나는 일이나, 전혀 다른 도시에서 여행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하나의 대상이든, 복수의 대상이든 다양한 관점, 다양한 기억, 다양한 해석을 조합해서 체계를 갖추면 지식이 된다. 의미 있는 지식이란 단 하나의 대상, 단 하나의 케이스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한 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대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런 개념을 원리라고 부른다.


일이란 다양한 해석의 체계적 조합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일의 목적은 가치 창출이다. 가치란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가치는 두 종류가 있다.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포장된 가치와 진짜 도움이 되는 실질적 가치다. 일이 현실에서 성립하려면 두 주체가 필요하다. 일을 하는 사람과 일의 결과물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일의 프로세스로 인해 돈이 들어오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일의 결과를 경험하는 사람이 자신이 되면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 일의 결과를 경험하는 이가 타인이 되면 돈이 들어오는 일(돈이 들어올거라 예상되는)이다.


일의 문제란 다양한 관점을 하나의 논리 속에 얼마나 조화롭게 체계화시키는가의 문제다. 관점의 차이가 일을 탄생시키고, 관점의 차이로 인해 일이 해결된다. 일의 과정은 차이를 적절히 조정하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다루는 일이다. 일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만족이다. 나와 타인의 만족을 목적으로 한 일이라야 보람을 느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 타인을 대상으로 일을 하는 것은 비즈니스라 부른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타인의 만족이다. 타인이 만족할 때 돈이 벌린다. 돈은 목표가 아니다. 돈은 부록, 부산물이다. 이익은 타인에게 도움을 준 댓가로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돈을 목표로 삼는 비즈니스는 작동하지 않거나, 지속되지 않는다. 주객이 바뀌면 사업은 사기로 전락한다. 


일을 알고, 일을 잘 하려면 다양한 관점을 깊고 넓게 이해해야 한다. 관점이 달라지면 기억이 달라지고 기억이 달라지면 세계가 달라진다. 관점은 가치관을 만든다.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 다양한 기억, 다양한 생각, 다양한 해석을 깊고 넓게 이해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주기 위해 서로 다름을 연결하는 능력, 그것이 직무 역량이다. 직무 역량은 단순한 암기, 계산 능력, 지식의 저장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나와 다른 것, 내가 싫어하는 것에 기꺼이 다가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일의 시작과 끝이다. 낯선 존재를 내 몸 속으로 넣는 행위, 무언가를 먹어야 생존할 수 있듯, 낯설고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비즈니스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똑같다. 


스펙만 쌓으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태도는 곤란하다. 일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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