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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Jun 04. 2023

2012년부터 몇년 동안 책을 팔기 시작했다. 확증편향의 물리적 증거, 집착이고 편견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책을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내가 산 책들의 표지를 보고 있으면 과거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미래로 가고 싶었다. 그럴려면 현재의 나를 만든 요소 중 하나인 나를 만든 책들과 결별해야 할 듯 했다.


분리수거하는 날 책을 버리다가 보수동 헌책방이 떠올랐다. 커다란 여행용트렁크와 배낭에 100여권의 책을 꾹꾹 담아 한 헌책방에 책을 펼쳐 놓았다. 책방 주인장은 매의 눈으로 살 책과 사지 않을 책을 구분했다. 자기개발서류는 사지 않았다. 책을 팔며 알았다. 오래오래 가치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그때부터 책을 파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틈만 나면 트렁크와 배낭에 책을 담아 보수동 단골 헌책방을 찾았다. 적게 받는 날은 1만 5천원, 많이 받는 날은 3만원을 받았다. 보통 2만원을 받았다.


책 판 돈을 손에 쥐고 보수동 헌책방을 거닐었다.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쓰고 싶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같은 사진 자료집을 샀다. 낑낑대며 가지고 간 책을 처분하고 한 권의 큰 책을 들고 집으로 왔다. 고철을 주고 엿바꿔 먹듯 그렇게 산 책들이 제법 된다.


저 책들은 버킷리스트 여행지 숙소 근처에서 뱅뱅 돌며 언제든 근사한 곳에 갈 수 있다는 설렘과 뿌듯함과 비슷하다. 아직 안 봤다는 말이다.


책은 호수다. 내 책이란 흘러 들어오는 책과 흘러 나가는 책이 만든 그때그때의 결과물이다. 내가 죽어도 누군가가 읽을 가치가 있는 책만 사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 적지 않은 책들이 헤벌레 웃고 있다.  지난 3년간 200권 정도의 책을 샀고, 전자책으로 본 책이 400권 정도 된다.(제대로 본 책은 30여권, 대부분은 훑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책을 읽었다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는 인생임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는다든지,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독서보다 책 읽는 행위가 전부인 독서가 좋을 것 같다. 책에 담긴 정보와 통찰을 이용해 뭔가 이루는 것은 독서의 즐거움으로부터 따라오는 삶의 부록같은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다.


삶의 토대는 기억이다. 즐겁게 몰입해야 기억이 오래간다. 경험을 수단으로 여기면 즐거움이 줄어든다. 경험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즐거움이 전부다. 즐거움은 가치를 창조한다. 진지한 사회적 가치도 즐거움에 기반해야 한다. 즐거움의 재발견이 요구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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