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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May 05. 2023

어린이 날

어린이 날이다. 어린이 날 새벽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된 것도 며칠전이다.


바다에서 고기잡이 할 때 사용하는 그물의 길이는 수 킬로가 넘는다 들었다. 대형 어선들이 고기잡이하다 그물에 구멍 등이 생겨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면 로프를 끊어 그냥 바다에 버려왔다 들었다. 그렇게 바다에 유영하는 그물을 귀신그물라 부른단다. 물리적 분해가 되는 수백년 동안 귀신처럼 둥둥 떠다니며 거북이, 돌고래, 알바트로즈, 물개, 온갖 바다 생물들을 옭아매어 죽음에 이르게 한단다. 그렇게 버려져 떠다니는 죽음의 그물은 지구 바다 표면을 다 덮을 정도일지도 모른단다. 에이 설마 그 정도야 될까 싶지만, 대양에 떠다니거나 가라앉은 그물을 다 찾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마트 수산물코너에 채워진 바다 생물의 공급 체인을 생각하면 인간이 버려온 귀신그물은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을 듯 싶다.


98년 부산 꼭대기 집으로 이사왔다. 버스를 타려면 아래 동네 어귀로 한 참을 걸어내려가야 했다. 그 근처에 고기잡이 그물을 만드는 작고 허름한 공장이 있었다. 사업이 아주 잘 되었는지 10년쯤 전에 무척 큰 몇 층짜리 새공장을 지었다. 가내수공업하던 그물공장이 그물대량 생산 기업이 되었다. 가을이 되면 시골 들판에 거대한 마시멜로가 출현한다. 알곡 수확 후 남은 볏대를 깡그리 모아 꽉꽉 채우고 하얀 비닐로 둘둘 말아놓은 원통 구조물이다. 그 공장에서 만든 거대 마시멜로 같은 그물 덩어리들이 공장 앞 인도에 가득가득 놓여져 있었다. 때때로 지게차가 그물 덩어리를 트럭에 싣는 장면도 보았다.


대형 그물 마시멜로가 인도에 적재된 장면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 생각했다. 보도블럭도 새로 생겼고, 공장 건물도 새로 생겼는데, 그물 보관 장소가 필요하면 새공장 지을 때 설계를 했어야 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공적 공간을 사적 행위의 공간으로 상습 점유하는 일이 이해되지 않았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살다 잊어버렸다. 그게 10년 전쯤의 일이다.


지난 주에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 공장 그물 덩어리 하나가 경사진 길을 한 참 굴러가다 인도를 걸어가던 사람들을 덮쳤다. 몇몇 어른들이 다쳤고, 등교길의 10살 여자 아이가 죽었다.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만약 그때 강한 민원을 넣었다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다.


어린이 날이라는 오늘을 맞이할 그 죽은 아이의 부모가 떠오른다. 깜짝 놀래 주려고 선물을 미리 사 놓았을지도 모른다. 오늘을 맞이할 자신이 없어 밤새 흐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물이 줄과 줄의 연결이듯,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들도 나와 연결되어 있다.

바다 생물은 그물에 걸려 목숨을 잃고, 우리는 그물 덕분에 마트에서 장을 본다.

어떤 그물은 바다에 가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다.


마음껏 살아보기도 전에 사라지는 삶은 슬프다.

맘껏 살지 못한 삶은 나이를 떠나 모두 어린이다.


오늘은 어린이 날이다.

진짜 삶을 마음껏 살아보지 못한 이들을 위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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