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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by 피라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동의하지 않든, 이미 오래 전부터 IT기기의 문제점을 알고 스마트폰 등의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든, 그런 삶을 살아가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괴짜라는 말을 듣든 21세기 이후의 인간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오래전부터 스마트폰과 일상의 상관관계를 어렴풋이 느꼈다. 더 거슬러가면 인터넷과 일상의 상관관계다. 여기서 말하는 일상이란 기분, 몸과 마음의 컨디션, 잠에서 깼을 때, 외출을 할 때, 사람을 만날 때, 길을 걷고, 운전을 하며 시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건물, 간판, 물건, 고양이, 새, 하늘, 광고, 버스, 지하철, 보도블럭, 그리고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온갖 생각과 감정 등을 통튼 '데이터'를 뇌가 처리하는 방식이다.


난 한 번도 정보 서핑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음으로써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자료를 찾고 저장하기 위해서 SNS를 하고, 검색을 했다. 트위터든, 페이스북, 쇼핑이든, 크고 작은 화면(스마트폰, 아이패드, 모니터)에 많은 시간을 뺏긴 날은 왠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마케팅이 본질인 디지털 세계에서 길을 잃고 무언가에 흐르듯 정신을 빼앗긴 뒤에는 찝찝한 느낌의 컨디션 저조가 뒤따랐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집중도가 떨어지고, 정신이 산만해져서 뭘 해도 겉도는 느낌이었다. 디지털 세계의 접속이 현실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걸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20년 정도의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최소화'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처럼, 스마트폰은 뇌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느낌' 때문이다.


1. 내 스마트폰은 통화가 안 되는 멍텅구리다. 24시간 중에 20시간 정도는 방해금지모드로 설정되어 있다.

2. SNS는 가능한한 멀리 한다.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30분 이상 하지 않는다.

3.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기까지 스마트폰이 놓인 근처를 끔찍한 살인 현장처럼 대한다.

(가까이 가지 않도록 슬슬 피해 다닌다. 전날 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둔다.)

4. 모든 알림 기능을 껐다.


본격적으로 이렇게 산 지 1년이 넘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 집중력이 살아났다. 이유없이 충만한 느낌을 때때로 느낀다. 뭐든 재미를 느낄 때가 많다. 어떤 사회적 인정 없이도 내 삶을 꿋꿋하게 살아갈 힘이 생겼다. 이 모든 것이 스마트폰 사용을 줄인 것 때문이라고 말하면 억측일지 모른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스마트폰과 상관관계가 분명히 있다 본다.


가장 명징한 변화는 나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이 살아난 것이다. 인터넷은 패스트푸드같은 정보와 지식을 얻는 댓가로 나를 희석시키는 경험이다. 이기적 나는 좀 희석되어도 좋다. 이기적 나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주체로서의 나다. 삶은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이다.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주체가 없으면 삶의 의미는 사라진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삶은 바다에 몸을 던져 파도 거품으로 변해버리는 인어공주의 운명이다. 존재의 사라짐이다.


혹자는 반박할 지 모른다. 스마트폰 덕분에 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지식과 정보를 쉽게 얻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가? 맞는 말이다. 실제로 뇌가 그렇게 착각하니까. 거대기술기업은 그런 뇌의 착각을 이용해 돈을 번다. 현실 세계는 쪼그라들고, 왜곡되고, 사라지지만 가상 세계는 점점 공고해지고 거대해진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골방 쇼파에 누워 치킨을 뜯으며 화면 속에서만의 안락함을 느끼는 삶도 나쁘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그 치열한 최선의 생각과 행동을 할수밖에 없도록 설계하고 부추기는 주체의 목적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불행히도 인간은 아직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온라인 세계에 적응한 인간은 오프라인 세계에서 무기력하고 우울함을 느낀다. 뇌를 중심으로 온라인 세계가 오프라인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가'도둑맞은 집중력'의 주제다.


죽어도 SNS를 끊을 수 없고, 엘리베이트 속, 건널목을 건널 때도 잠깐씩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은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약이니까. 이 책을 읽고도 습관성 스마트폰 사용을 끊지 못한다면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암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걱정하며 단명하는 것보다는 멍청하게 오래 사는 것이 나을 지 모르겠다. 젊은 나이에 벽에 똥칠하며 헤헤거려도 나름대로 가치있는 삶이다. 하지만 개개인 삶의 가치와 의미는 기억에서 비롯되는데, 스마트폰은 인간의 기억을 흐리게, 왜곡되게 만드는 원흉이다. 스마트폰이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리 생각과 정확히 반대라는 주장이 책에 실렸다.


인간은 무언가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낀다. 스마트폰은 몰입의 능력을 산산조각낸다. 스마트폰만큼 몰입의 경험을 주는 선사하는 경험은 없다고? 얼마나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스마트폰에 몰입하는지 몰라서 그런 주장을 하냐고? 몰입과 중독을 헷갈리면 안 된다. 몰입은 인간에게 지속가능한 행복, 성장의 기쁨과 충만함을 선사하지만, 중독은 파멸로 이어진다. 몰입은 뇌기능이 좋아지는 경험이고, 중독은 뇌가 파괴되는 경험이다.


핵심은 시간이다. 가능한한 빨리 어떤 상태에 도달하려는 목표, 오직 도달이라는 목표 중심적 접근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중독이냐 몰입이냐를 가르는 것은 속도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씨를 뿌리고 몇 년을 기다리며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은 몰입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오직 과정 속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를 느끼려는 태도가 몰입감으로 연결된다. 몰입감을 느끼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다. 다수 인간을 위한 속도인지, 인간을 경기장으로 내몰아서 돈을 벌려는 소수 인간들을 위한 속도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P.S :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아이, 청소년들이 스마트폰과 연결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부모는 꼭 읽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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