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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by 피라

'네가 자주 가는 곳,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읽는 책이 너를 말해준다.' 270년 전에 살았던 괴테의 말이다. 그때는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었다. 물론 자동차도 없었다. 사람들은 걸어다녔고, 가진 자들은 말과 마차를 탔다.


'뇌수의 분실'을 넘어서 스마트폰이 뇌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가끔 지하철을 타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매일 지하철을 타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라 관심도 가지 않는 장면이다. 10명 중 9명은 스마트폰을 보는 장면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인지, 스마트폰이 우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헷갈린다. 세탁기처럼 노동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는 비즈니스에서 스마트폰에 종속되게 만들어 무엇도 할 수 없는 바쁨을 선사하는 비즈니스가 대세다.


자주 가는 곳, 곁에 있는 사람, 읽는 책은 정보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뇌에 입력되는 정보가 대체로 어떤 것인지와 상관있다. 데이터들이 모여 메시지를 형성하면 정보라고 부른다. 270년 전의 삶을 생각해보면 데이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요양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시대 삶이다. 머드축제를 찾아 뻘에 뒹구는 군중들처럼 모두들 진흙을 뒤집어 쓰고 있어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구별되지 않는다. 축제를 찾은 사람들은 타인들처럼 진흙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즐겁다.


아무도 없는 보령 갯벌을 찾아, 혼자서 갯벌을 뒹군다면 미쳤다는 소릴 들을 것이다. 주위에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당연한 행동, 재미있는 행동, 나도 해보고 싶은 행동으로 여긴다. 상식의 본질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일 뿐이다.


스마트폰 화면이라는 갯벌에 몸을 던져 틈만 나면 뒹구는 건 뇌를 진흙으로 덮는 행위다. 새로운 정보, 재미있는 정보들이 뇌신경의 전류를 타고 몸 속으로 들어오면 더 현명해지고, 똑똑해진다고 착각하지만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편향이 강화되고, 생각하는 근육이 퇴화된다고. 손바닥만한 크기 속 액정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동안 세상은 점점 말라간다. 뇌는 지갑과 같다. 지갑에 1만원이 있고, 그 돈으로 밥을 사먹으면 더 이상 무언가를 살 돈이 없다. 뇌라는 지갑에는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집중력이 있는데, 스마트폰에 집중력을 빼앗겨버리니 다른 곳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집중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약에 중독되면 밥을 멀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괴테의 말을 2023년 버전으로 말하면,

'네가 자주 가는 사이트, 네가 팔로잉하는 사람들, 네가 보는 글, 이미지, 영상이 너를 말해준다.'로 바꿀 수 있다. 어떤 정보를 접하든 그 정보를 다루고 활용하는 주체적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입력되는 정보에 종속된 존재일뿐일지 모른다. 그게 진실일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투쟁한다. 배터리가 없으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디지털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게 요즘 삶의 목표다.


공교육에서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0과 1, 예와 아니오에 종속되자는 뜻인지, 활용하자는 뜻인지,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겠다는 뜻인지, 교육계에서 말하는 디지털 교육의 실체와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리터러시에 관한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 배움의 목적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돌고돌아 결국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되는 문제 아닌가 싶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할뿐,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사회라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인가? 요즘에 학생들을 만나면 난 솔직하게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함께 답을 찾아가보자고. 교육이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답을 찾아가는 법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될 줄 알면서도 해보고 또 해보는 불굴의 힘을 기르는 법을 알려주는것 아닐까?


전자칠판을 달고, 아이들에게 테블릿을 나눠주고, 디지털교과서와 웹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움직이고, 4차, 5차, 6차 산업혁명이 지구를 덮으면 세상은 더 좋아지고, 나는 더 행복해지는가? 사막화 심해지는 세상 속에서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는 지하철 풍경만 떠오른다. 배터리만 꺼지면 없는 세상이다. 전부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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