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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Jul 10. 2023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야옹~ 야옹. 고양이 소리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새끼 고양이었다. 며칠을 그냥 넘기다가 소리의 정체를 찾아 나섰다. 17센티 남짓한 아이고양이를 발견했다. 폐가가 된 게스트하우스 화분 속이었다. 방부목으로 만들 화분 틀과 화분 안의 틈, 10센티 남짓한 좁은 공간에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아기 고양이는 계속 울었다. 다음날 또 가보니 똑같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 어미가 없는 것 같았다. 고심 끝에 고양이를 꺼내어 쾌적한 마당 데크 공간으로 옮겼다. 물과 먹이를 주었다. 천 깔개와 푹신한 베개도 놓아 주었다. 아기 고양이는 잘 먹지 않는 것 같았다. 걱정이 되어서 보는 앞에서 먹는 걸 몇 번 확인했다. 아침 저녁으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다. 처음 1주일 정도는 베개애서 잠을 잠을 자고 있었다. 1주일 뒤부터는 제법 돌아다녔다. 이대로라면 씩씩하게 자라는 아기고양이가 될 거라 생각했다. 2주 정도 아기 고양이의 안부를 아침저녁으로 확인했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 아기 고양이를 보고 출근했다. 토요일에는 고양이에게 가지 못했다. 먹이와 물이 있으니 잘 지낼거라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에 가보니 아이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 죽은지 꽤 되어 보였다. 더운 날씨에 비까지 와서 그런지 벌써 부패가 진행되고 머리쪽에 구더기들이 바글거렸다. 미안함, 죄책감, 슬픔. 비장함이 밀려왔다. 화단 한 가운데에 구덩이를 하나 만들었다. 살아있는 생명으로 태어났다가 분해되고 있는 물질 덩어리가 된 아기고양이를 묻어주었다.


아기 고양이 생각이 자꾸 난다. 그의 삶에 간섭을 하지 않았으면 살았을까? 좀 더 세심하게 돌보았으면 죽지 않았을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어떤 생명이든 슬프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숨을 쉰 횟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 아닐까? 너무 일찍 간 것은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이 없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 앞에서도 죽음은 슬픈 일이다. 어떤 죽음,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도 마찬가지다. 지렁이의 죽음이든 부모의 죽음이든 본질은 똑같다. 크고 작은 죽음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한다. 어릴때는 죽음이 간단한 문제였으나, 죽음과 만나는 경험이 쌓일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아는 것보다 낫다. 무엇이라도 배울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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