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타인터뷰 Jul 13. 2023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았다. 아이의 사망률이 극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건 100년도 안된 최근의 일이다. 케바케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15명을 낳아 5명 정도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70, 80년대에 윗 세대의 형제가 7명, 8명인 경우는 흔했다.


형제가 7명인데, 부모가 한 아이만 자신의 자식이라 여긴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한 아이에게만 밥을 챙겨주고, 한 아이하고만 놀아주고, 한 아이의 미래만 생각하며 한 아이만 교육하고, 나머지 아이들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고 방치한다면. 요즘 세상에 그 부모는 어떻게 될까? 아동학대범으로 처벌받을 것이다.


그 부모도 나름의 사정은 있을 것이다. “이 형편에,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그게 최선이었어요. 한 아이라도 살리고, 한 아이라도 제대로 교육하고 싶었어요.”라며 눈물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것 같다. 요즘 고등학교(특성화고) 교육이 많아 학생들과 많이 만난다. 대부분 학교는 공무원에 몇 명 붙었고, 금융권, 중견기업에 몇 명 붙었다며 홍보에 집중한다. 그래야 학교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고, 해마다 신입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학년 기준 많아야 200명 남짓 졸업생 중 공무원은 1명~3명, 홍보할만한 기업에 취업한 학생은 대체로 10명 안팎이다. 학급(10반 기준)으로 따지면 20명 중에 1~2명 수준이다. 7명 자식들 중 선택받지 못한 6명의 아이들처럼 자랑스런 졸업생이 되지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은 대체로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교사들도 많다. 어떤 학교는 학생들을 깨우지 않는 방침으로 운영된다. 듣고 보니 이해는 된다. 괜히 깨웠다가 학생과 시비가 붙거나 학대 등으로 악의적 신고를 당해 된통 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정치인의 자아비대증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자아비대증도 심각하다.


학생들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해보니, 수업 시간에 자면 깨우는 교사들이 아직은 6:4정도로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문제는 깨워도 깨워도 잔다는 것이다. 보통은 3번 정도 깨우고 그 다음은 신경쓰지 않는다 한다. 그 이상 넘어가면 서로의 삶이 피곤해진다. 학생은 자퇴를 할 수도 있고, 교사는 소송을 당할수도 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아이들은 학교에 와서 무기력하게 자고, 교사는 좌괴감을 느끼며 수업을 한다. 특성화고뿐 아니다. 인문계도 대동소하단다. 입시에 도움 안된다 판단되면 일단 잠을 잔다.


4시간 수업을 하면, 20명 학생 중에 잠을 자는 학생은 절반 가까이 된다. 대부분 엎드렸다 일어나길 반복하고, 4교시 내내 자는 학생들도 3, 4명 정도 된다. 4교시 내내 멍한 눈빛으로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모두 즐겁게 수업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매우 드물다. 어떤 학급은 1교시에 22명 중에 18명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잠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항상 물어본다.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다 자는 경우도 있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수업에는 학생들이 정말 안 자고, 초집중하는 거예요.” 평소에는 도대체 어떻다는 말인가?


마음이 무겁다. 7명 중 1명의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는 부모도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아이를 굶기고 싶지 않아 음식을 훔친 엄마를 단죄하기만 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모든 책임을 학교의 역할, 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6명의 아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문제 해결이 시작된다.

서울대에 들어갈 3% 학생들이 아니라, 그러지 못하는 다수의 학생들을 바라봐야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더욱 공부 잘하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공부 잘하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공부 못해도, 입시에 도움되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지 않도록 만드는 교육,

공부 못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좋은 뜻을 가지고 노력하면 검사, 의사 못지 않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정치의 역할이다.


7명의 아이 모두가 잘 살 수 있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치인이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