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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Aug 03. 2023

잼버리


급히 정리하듯 서랍에 다 때려 놓고,

열쇠를 채웠다.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랍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새만금에 대한 것들이다.


잼버리...

잼버리가 새만금을 소환했다.


새만금...

오래 잊힌 말, 잊고 싶었던 말이다.


잼버리 때문에 새만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새만금에서 잼버리가 열리고 있단다.


새만금과 잼버리...

도저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새만금에 대한 글을 썼던 기억이 났다.


2008년쯤 닫았던 블로그에 접속했다.

새만금 글을 읽었다.

직접 찍은 사진도 보았다.

날짜를 보니 2005년 1월 7일에 썼다.


바다에 흙을 부어 땅으로 만들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도,

결코 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현실 속에서 다 잊고, 묻고, 앞만 보고 가고 싶어도

결코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겐 새만금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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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세상, 2005.1.7


지난 12월에 변산반도, 금강하구, 천수만을 다녀왔다.

변산을 거쳐 새만금에 갔다.

새만금은 이번에 세번째다.


작년 봄에 처음 새만금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바다 한가운데 방파제를 달리며, 달리며, 달리며...

바람을 맞으며, 맞으며, 맞으며....

나는 보았다. 새만금을

말로만 듣던 새만금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짠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살며 여행하며 이것 저것 많이 본 편에 속한다.

무얼 보아도 그리 대단할 건 없었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를 직접 보았을 때도 별 느낌이 없었다.


새만금은 달랐다.

인공의 구조물로 인해 그렇게 큰 충격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피라미드는 내 상상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새만금은 내 초라한 상상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알긴 뭘 알아?"


규모,

규모 때문이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 때문에 육지가 되어야 하는 바다

처음에는 타살이었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 죽어가고 있는 끝없는 바다, 침묵의 바다


생명과 풍요로 가득찬 아름다운 공간이 되기 위해 

수천년, 수만년, 수십만년 세월로 켜켜이 쌓인  시간과 공간을

한 줌의 먼지로 여길만큼 새만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저 광활한 바다가 매워지면 사라질 것이다. 영원히

저 생명의 땅 갯벌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셀 수 없는 착한 것들


수천 년 동안  저 공간과 저 생명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왔던 착한 사람들

생명들이 화석이 되고, 생명과 관계했던 주민, 어부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새만금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하지만, 나는 새만금의 사진을 한 장도 올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진도 새만금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만금은 가서 보아야 한다.

가서, 바라보고, 느껴야 한다.

그곳에 가면,

인간의 무지와 오만이 저지르는 거대한 바벨탑을 볼 것이다.


새만금을 가기 전에 나는 새만금을 나름대로 이해했다.

내가 관념적으로 이해한 새만금은 새만금이 아니었다.

내가 이해한 것은 해일로 수십만명이 죽어간 현장에서 찍은 물속에 잠긴 자동차 한 대보다 못한 것이었다.


새만금은 노태우의 공약이었다.

그가 대선을 앞두고 전라도 표심을 얻기 위해, 군산지역의 개발계획을 발표했지만, 지역민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어떨결에 내세운 기상천외한 공략이 새만금 간척사업이었다.

대권에 눈이 멀어 즉흥적으로 발상된 유치한 공략이 현실이 되고 만 우리나라............


새만금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아직 가보지 않은 이에게는 꼭 한 번 가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서해안 인근의 대부분의 육지들이 일제시대때  일제에 의해서 간척된 매립지라는 것을...

서해안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갯벌이었다는 것을.....

군산은 일제때 쌀을 수탈하기 위한 전진기지였다는 사실을, 일제는 한 섬의 쌀이라도 더 수탈하기 위해서 서해안 연안의 매립할 수 있는 땅은 모조리 매립하여 쌀수탈을 위한 공급처로 만들었다는 사실을.....그런 공사를 수행했던 그 시대의 기득권 세력은 해방후에도 지속적으로 서해안을 매립하여 땅 장사를 했다는 사실을.... 계화도, 시화호........ 알려지지도 않는 올목 졸목한 숱한 서해안의 갯벌들이 매워졌다.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이자, 인간의 삶을 위한 온갖 해산물들의 보고이다.

갯벌을 메우고 인간들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노동자가 되어 돈을 벌어 중국에서 수입한 해산물을 사 먹는다. 

갯벌... 그 자체가 공장인 것을......

왜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것들과 공생하지 못하는가?

왜 인간은 있는 있는 그대로 속에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가?


그랜드 캐년을 가보았다.

한 미국의 여행 가이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을숙도를 얘기했고, 한국의 전설속의 갯벌을 얘기했다. 한국의 자연은 50%만 보전되었다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을 것이라는데 우리는 의견을 일치했다. 장담컨데,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선지자가 있었다면 관광수입이 GDP의 40%이상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왜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어렵게 어렵게 돈을 벌려고 하는가?


 전 국토가 공사중이다. 승용차를 타고 국도변을 달리든, 고속도로를 달리든, 기차를 타고 달리든, 창밖을 계속 바라보면  알 것이다.  5km마다 크고 작은 공사 장면이 보인다.

우리는 공사만 하다 죽을 운명인가?

언제쯤 공사를 끝내고, 편안하고 조용히 살 수 있나?

자본주의가 팔다 팔다 돈을 팔기 시작한 것처럼,

공사를 하다하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저 광활한 바다와 갯벌을 메워야만 경제가 성장한다면

그런 경제는 부정하고 싶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해야 유럽 신의 정의가 실현된다면

그런 신은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정의다.


우리의 위기는 성장의 위기가 아니라, 분배의 위기다.

분배를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시스템이 합리적이고 정의롭다면 분배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세상과 타인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야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다.


해창 갯벌 사진이다.

이 모든 염원을 솟대와 장승에 담아 이 땅의 뭇 생명과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을 기원하며 만든 구조물들이다.

내가 찾은 해창갯벌은 너무나 슬펐다.

이미 갯벌은 육지화되고 있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살아 숨 쉬는 땅, 자연이 선물한 온갖 해산물과 생명들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곧 공장 부지나 농지, 기타 용도로 독점되어 분양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나 자신이다.

저 솟대 위의 서글픈 기러기처럼 춥고 고독하고 처연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안락한 온기를 향해 자리를 옮길 것인가?


무엇이 내 삶을 가치롭게 만들어 좀 더 근원적인 행복을 위한 길인가?

한기에 벌벌 떨며 세상과 유리된 저 솟대 위 기러기가 자화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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