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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Nov 22. 2023

시카고 이름의 유래


시카고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도시 인구는 270만명이고 시카고 랜드라고 불리는 광역 도시권의 인구는 950만명이다. 1837년에 시가 된 시카고는 영국의 멘체스터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도시다. 1833년에 시카고 인구는 약 200명이었고 1840년경에는 4,000여명이었다. 1848년 개통된 일리노이 미시간 운하와 철도로 시카고는 미국 서부와 동부를 잇는 중요한 교통 중심지가 되었다. 1862년에 5만 7,000명이었던 시카고 웨스트 사이드 지역의 인구는 1872년에는 21만 4,000명으로 늘어났다. 시카고는 급격히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길가의 도랑이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로 막히는 바람에 '형언할 수 없는 액체가 고여 웅덩이'가 되어버렸다. 도랑의 악취가 얼마나 심했든지 돼지조차 몹시 진저리치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옥외 변소 때문에 식수원인 우물이 오염되었다. 단단한 점토층 위 평지에 자리한 시카고는 오물더미에서 퍼져 나오는 '죽음의 안개'로 유명한, 습기가 많고 오염된 도시였다. 강에는 오수와 산업폐기물이 그득했다. 세계적인 정육업 중심지인 '돼지고기 도시'로 부상할 무렵, 시카고에서는 매년 도살된 가축 300만 마리의 내장과 피 때문에 위생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오염이 심해졌다.(메트로폴리스, 벤 월슨) 19세기의 시카고는 멘체스터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빨리 인구가 늘어난 지옥같은 도시였다. 하지만 처음 도시로 태어났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1820년대의 시카고, Granger





시카고는 일리노이주 북동부에 있는 미시간 호수 서쪽에 붙어 있는 도시다.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 야생 마늘이 많이 자생하고 있었나 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곳을 '쉬카쿠와(Shikaakwa)'라고 불렀는데, 뜻은 야생 마늘 혹은 야생 마늘이 자라는 들판이라는 뜻이다. 1679년 프랑스 탐험가였던 로베르 드 라살이 회고록에서 이 일대를 프랑스어로 '세카고우(Checagou)'로 기록하면서 이 곳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866년 Henri Joutel은 자신의 일기에 "시카고우(Chicagou)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야생 마늘이 많이 나는 곳"이라고 적었다.  야생 마늘 혹은 야생 양파라고 불리는 알리룸 트리코쿰(Allium tricoccum)은 북미 원주민의 요리와 전통 의학에 사용되었는데, 오래 전 시카고 지역에 널리 자생하던 쉬카쿠와라 불리는 마늘과 같은 종으로 추정된다. 흔히 산마늘이라고 불리는 구근 다년생 식물인 Ramp, Wild leek와 같은 종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야생 부추, 야생 양파, 야생 마늘, 산마늘 등으로 불리는 램프(Ramp)는 아메리카 동부가 원산지인데 숲이 신록으로 물들기 전 이른 봄에 싹이 올라와 먹을 수 있는 식물 중 하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봄의 전령인 이 식물을 특히 사랑했다 한다. 오늘날에도 애팔레치아 지방에서는 산마늘이 핀 것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린다. 산마늘은 애팔레치아 야채라고도 불리며 체로키족의 중요한 식량원이었다. 산마늘(Ramp)은 다 자라 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어른 식물이 되려면 7년이 걸린다. 쉬카쿠와, 알리룸 트리코쿰, Ramp, Wild leek가 모두 같은 식물일수도, 조금 다른 식물일수도 있겠다. 사진을 보면 한국의 산마늘인 명이나물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보릿고개에 목숨을 이어주던 고마운 풀이라고 해서 명이(목숨을 이어주는)나물이라고는 이름이 붙었다는 걸 보니 산마늘은 북미에서나 한국에서나 무척 중요한 식물인 것 같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마늘이 어쩌면 산마늘일지도 모르겠다. 






17세기 모피 무역을 시작으로 드넓은 산마늘 자생지였던 시카고 들판에 프랑스, 영국 등 외지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19세기 도시가 팽창할 무렵에는 아일랜드, 독일 등의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변화의 임계점을 넘자 시카고의 산마늘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1만년 전부터 살았다던 시카고 지역 원주민도 사라졌다. 시카고 지역에 살던 원주민은 1838년 8월, 백인들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했다. 859명의 포타와토미 부족은 하루 8시간씩 걸어가면 32일이 걸리는 캔자스까지 걸어갔다. 강제 이주 과정에서 42명이 사망했다. 이 죽음의 길에서 그들을 버티게 만든 것은 산마늘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카고라는 도시 이름은 산마늘에서 유래되었다. 이제부터 시카고를 떠올리면 보릿고개와 명이나물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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