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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Dec 02. 2023

페미년

올해는 고등학생 대상 수업이 많은 해였다. 100시간이 넘은 듯하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기억이 있다.

오전 4교시 동안 진로 교육을 하는 수업이었다. 20명 정도 되는 학급에 남학생은 15명, 나머지는 여학생이었다. 반장은 남자였고 빅마우스였다. 그 학급에서 가장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로 보였다. 학급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친구였다. 그는 1교시 시작하자마자 쉴 세 없이 페미년은 맞아야 한다. 사라져야 한다. 죽여야 한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냥 넘길 수준을 넘어섰다 판단되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차근차근 질문을 했다. 질문을 하면 학생이 대답을 하고, 그 대답에 꼬리를 무는 반박 질문을 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그 학생의 부모는 매우 돈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은 페미니즘을 공산주의와 같은 걸로 여기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생각들을 배우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유튜브란다. 그러면서 유튜브에서 한 말을 끝없이 내뱉으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난 좀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까지 심각한지는 몰랐다. 수업을 멈추고 다른 학생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20여명의 학생들 중, 약 70%정도가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 남학생들은 3명 정도 있었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페미년이라는 말을 달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페미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침묵하는 듯했다. 


반장 학생은 4교시 내내 입만 열면 페미년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계속 말했다. 군대 안가는 것, 여성 전용 주차구역, 여성전용 지하철칸 등과 같은 역차별이 주된 논리였다. 학생은 공정성의 화신이었다. 자신의 이익, 혹은 자신의 미래 이익에 대한 십만분의 일이이라도 손해가 생길 우려가 있으면 삶을 바쳐서라도 흥분하는 발끈한 태도를 보였다. 아.. 이런 것이 그들이 말하는 이 시대의 공정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해서 학생에게 물었다. 왜 여자들이 그렇게 미운가? 왜 그렇게 페미니즘이 싫은가? 꼬리에 꼬리를 연결해서 계속해서 물었다. 학생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페미년들은 남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존중받고 싶구나.


그 다음 또 물었다. 

"존중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니?"

학생은 아버지를 존중한다고 했다. 왜 존중하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가족을 위해 일하니까, 돈을 많이 벌어오니까 존중한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돈을 아주 많이 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존중한다고 말했다. 또 물었다. 그런 아버지가 돈을 하나도 벌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도 존중할거냐고 물었다. 학생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세상에는 가정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학생은 자기 아버지를 알고, 믿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 말했다. 그런 아버지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마다 다 실패하고 돈을 하나도 벌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면, 오히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면 그래도 아버지를 존중할거냐고 물었다. 학생은 고민 끝에 그렇게 되면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질거라고 말했다. 솔직한 학생이었다. 학생은 기분이 몹시 나쁜 듯했다. 내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다 여기는 것 같았다. 자존심이 많이 뭉개진 표정이었다.


나는 또 물었다. 

네가, 혹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여자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남자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네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 된 아버지에 대한 너의 대답을 통해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너의 문제인가? 상대의 문제인가?


4교시 동안 끝없이 자신의 주장을 이어가던 학생은 드디어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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