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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an 27. 2024

칼국수를 먹고

부산에서 수십년 살며 난다긴다하는 칼국수 맛을 많이 보았다. 해운대 달맞이 살 때는 이마트근처의 칼국수집을 자주 갔었다. 그 집은 살짝, 아주 살짝 걸쭉한 느낌의 국물에 김치를 다져 만든 양념, 그리고 집에서 직접 밀가루 반죽해서 칼을 썰어 놓은 느낌의 면이 특색이었다. 칼국수는 다 비슷비슷하다. 멸치육수 베이스에 고명을 살짝 얻으면 칼국수가 된다. 맛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모든 칼국수는 조금씩 다 다르다. 아직 프렌차이즈 업계가 점령하지 않은 영역인 칼국수는 모두 비슷하지만,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맛이 매력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 비슷비슷하지만,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칼국수는 아직 보편성 바탕의 다양성 매력을 지닌 그런 음식이다.


사는 동네인 부산 영도에 그 칼국수집이 생긴 것은 7년전쯤이다. 식당이라고는 없는 큰 도로변 공터에 세련되고 예쁜 신축 건물이 올라가더니 건물 전체가 칼국수집으로 오픈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길에서 파는 흔하디흔했던 붕어빵처럼 시장통 아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단할 것도 하나도 없는 칼국수집을 오픈하기 위해 건물을 짓다니. 그것도 멋진 건물을. 게다가 더 놀라운 건, 메뉴는 단 하나 칼국수밖에 없었다. 더 놀라운 건 가격도 저렴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맛이었다. 화려하지도 튀지도 않는 집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는 평범한 국수 맛인데, 맛있었다. 조미료도 쓰지 않은 너무나 기본에 충실한 맛인데, 맛있었다. 나만 그렇게 여긴 것이 아니었다. 칼국수집에는 사람이 항상 북적였고, 곧 칼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집이 되었다. 2년뒤쯤 칼국수집은 똑같은 크기의 옆 공터를 매입해서 감쪽같이 기존의 건물을 그대로 살려 2배의 확장공사를 했다. 


손님이 많아져 확장을 하면 음식 맛이 예전같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칼국수집은 한결같이 맛있었다. 손님들은 두배 이상 넓어진 쾌적한 공간에서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집에서 칼국수를 먹으면 주인은 칼국수에 인생을 걸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뭘 내세우는 일이 없다. 언제나 겸손하고 담박하다. 변하지 않는 칼국수 맛처럼. 세월이 흘렀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칼국수집도 힘들어진 것 같았다. 식재료 상승으로 가격을 조금 올렸고, 양도 예전에 비해 작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칼국수를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놓고 있다. 오늘 저녁은 그 집에서 칼국수를 한 그릇 했다. 행복했다. 정성이 담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행복감. 변하지 않은 맛과 분위기다. 빈 자리가 없었다. 사람마음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이 집에서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칼국수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내가 칼국수를 좋아하는 것도 엄마의 식성을 닮아서일게다. 부산에서 칼국수 좀 한다는 여러 식당에 엄마를 모시고 갔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엄마는 이 집 칼국수 맛을 보지 못했다. 이 집이 오픈했을 때는 엄마 몸이 많이 안좋아 병원 입원 직전이었다. 입원 후 2달이 안 되어 엄마는 돌아가셨다. 목련이 떨어질때였다. 이 식당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이 칼국수 맛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한 편으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칼국수집이 장사를 하는 동안 자주 와서 엄마가 만들어준 이 몸에 칼국수를 집어 넣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칼국수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강산에의 '라구요'라는 노래 가사가 자꾸만 떠올랐다. "..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라는 구절이 자꾸 생각났다. 추억이 담긴 음식, 정성이 담긴 음식, 사연이 있는 음식, 좋은 음식은 삶을 바꾼다. 식탁 위 한 그릇의 칼국수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양이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며 생각했다. 밀, 햇빛, 나비, 벌, 흙, 벌레, 농부, 기계를 모는 사람, 그 기계를 만든 사람, 파농사를 지은 사람, 그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만든 사람, 밀가루, 파, 김치, 참깨, 멸치, 김, 갖은 재료를 키우고, 유통시키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고, 서빙하고, 설거지를 하고, 준비하고 돕는 모든 사람들, 모든 존재, 그들 모두가 자신의 행동의 0.0001%까지 돈으로 환산해 금전적 보상을 받으려는 논리적 생각을 가졌다면 내가 앉은 식탁에 7천원짜리 칼국수를 올려 놓고 먹는 경험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볼때는 이해타산과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 같지만, 세상이 망하지 않고 아직까지 건재한 이유는 경제 활동 속에서도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 평범한 다수들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칼국수를 먹으면서 눈물이 났다. 7천원에 맛있는 칼국수도 먹고 세상에 대한 감사함도 배운 저녁이었다. 이 배움이 오래오래, 영원히 갔으면 좋겠다.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존재와 존재의 본질적 상호작용으로 느끼는 행복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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