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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

by 피라

이유도 목적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보름이 지났을 때 에게해 위에 있었다. 커다란 배의 갑판에서 72시간 동안 먹고 잤다. 에개해 수평선 위로 해가 지고,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바다와 해태양, 그리고 달 외에는 딱히 볼 것이 없었다. 간혹 섬에 들리곤 했는데, 기억나는 섬은 로도스, 미코노스, 산토리니, 그리고 크레타였다. 그곳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지만, 이름도 풍경도 멋졌다. 멋지다라고 느낀 이이유는 오래된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모든 여행자들이 바라는 이국적인 것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에게해의 바닷빛은 깊고 아름다웠다. 에게해는 민주주의의 고향이다. 민주주의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 그리스 앞바다는 에게해다. 에게해의 바다물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하면 마르다라해가 된다. 동쪽으로 바닷물이 흘러가면 보스푸르스 해협이라 부르고 32킬로미터를 더 가면 흑해다. 바다는 경계가 없다. 지브롤터의 지중해는 이스탄불에서 흑해가 된다. 보스포루스는 지중해와 흑해가 만나는 곳이다. 지중해와 흑해에도 역시 에게해의 바닷물이 흐른다.


인도의 남쪽 끝 깐야꾸마리 해변은 세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깐야꾸마리 모래밭에 몸을 나지막히 담그면 인도양, 아라비아해, 벵골만의 바닷물이 뒤섞이는 감각을 느낀다. 허나 바다는 하나다. 바다를 부르는 이름이 다를뿐이다. 인간의 갈등은 표현하는 언어 때문에 생긴다. 한국의 동쪽에 있는 바다는 동해고, 동해는 일본의 서쪽에 있는 바다다. 한국은 동해라 우기고, 일본은 서해라 우길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일본은 일본해라 우긴다. 인간의 갈등 90%는 말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출발해 10일 뒤쯤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에게해의 사방 수평선을 보았다. 수평선 위로 해가 지고 뜨는 것을 몇 번씩 보았다. 일몰과 일출은 다르다. 정지된 장면은 일몰이 일출 같고, 일출이 일몰같다. 일몰과 일출의 묘미는 흐름에 있다. 어둠이 깔리는 흐름과 어둠이 걷히는 흐름은 확연히 다르다. 일출은 세상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일몰은 세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간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에게해를 항해하는 배간판 위에서 꼼짝하지 않고 4시간 넘게 일몰을 바라본 것이다. 4시간이라니. 해가 지기 2시간 전부터 해를 바라보았고, 수평선 아래로 해가 완전히 가라앉고 난 뒤에도 2시간 넘게 계속 해가 가라앉은 곳을 바라보았다. 파도의 미묘한 출렁임도 구분되는 미세한 경계의 세계에 조금씩 어둠이 드리우는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인식의 세계가 비인식의 세계로 변해갔다. 서서히 서서히.


빛과 어둠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20살의 청년이 조금씩 늙어가듯 환한 낮의 망망대해가 조금씩, 조금씩 어둠이 드리워져 결국은 칠흑같은 어둠의 세계로 변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 생각이 바뀐다. 빛과 어둠을 가르는 것은 경계가 아니라, 아주 미세한 변화가 쌓인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인간의 어떤 말은 경계를 만들고, 어떤 말은 경계를 허문다. 낮은 경계가 만들어지고, 밤은 경계가 사라진다. 바다의 진면목은 밤바다다. 모든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에게해, 흑해, 지중해, 아라비아해, 인도양, 동해, 일본해 등 인간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명명한 이름일뿐이다. 특정 이름에 갇혀 바다끼리 싸움을 붙일 일은 아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삶을 풍성하게 만들 일이지, 삶을 매마르게 할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란 그건 것이다. 칠흑같은 에게해의 밤바다 속에 민주주의가 있었다. 지구의 바다는 하나다. 이름이 다를 뿐이다. 그 다른 이름 때문에 설렘이 생긴다. 다름은 갈등이 아니라, 문제해결과 재미의 발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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