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의 목적

쓰레기

by 피라



변화는 가속도가 붙는다. 세상이 점점 빨리 변하는 이유다. 어릴때는 구멍난 양말을 바느질해서 신었다. 지금은 이상한 짓거리라며 정신 차리라는 말을 들을 거다. 못쓰게 되면 버리는 시대다. 지속가능한 대량생산은 지구를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물건과 인간의 관계를 박살내었다. 언제든 버리고 언제든 사는 소비 문화는 경제성장의 엔진이며 청소년들을 오직 돈만 생각하게 박제시켰다. 굳이 청소년이라 한정한 것은 그만큼 가까운 미래가 걱정스러워서다. “난 틀렸으니 너희들 먼저 가!”라는 말을 하고 싶으나 갈 곳이 점점 사라진다.


물건은 쓰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려지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버려져야 지속가능한 생산을 할 수 있다. 어제 쓰레기봉투를 샀다. 30리터 10장, 50리터 10장, 75리터 5장을 샀다. 여백을 가장 중요한 컨셉으로 삼은 달집은 물건의 미니멀리즘을 구현했다. 하지만 스멀스멀 물건들이 늘어났다. 필요없는 달집 물건들과 절연하는데 1톤 트럭이 두 번 왕복했다. 큰 쓰레기는 트럭에 떠나 보냈지만, 작은 쓰레기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50리터 쓰레기 봉투 기준으로 지금까지 100개는 버린 듯하다. 그래도 계속 버릴 것이 나온다. 리모델링을 한다는 것은 쓰레기를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고심해서 돈을 주고 산 물건들이다. 어제 산 쓰레기봉투가 마지막이길 바란다.


정리하는 사람은 가혹해야 한다. ‘나중에 필요할지 몰라‘라는 생각을 하면 버릴 수 없다. 정리의 본질은 버리는 것이다. 물건의 위치만 옮기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변화다. 일시적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곧 흐트러지게 만드는 방식은 가짜 변화다. 리모델링의 본질은 버리는 것이다. 기존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부서진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상태가 된 지 5년이 넘었다. 쓰레기 봉투에 넣으려다 조립을 해보았다. 갈라진 부분을 눈에 띄지 않고 고정시키고, 부서지고 사라진 부분을 만들어 깨웠다. 원래 상태보다 더 좋아졌다. 세월의 나이테가 쌓여 이 놈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는 뜻이다. 이야기가 더 깊고 풍부해졌다. 안 버리길 잘 했다.


물건들을 하도 버리다 보니 버리는 기준이 생겼다.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든 것은 왠만하면 가차없이 버린다. 원래 세상에 없었던 것이니 원래의 자리로 돌려 보내는 것이다. 인공물의 자리는 소각장이나 매립장이다. 자리를 바꾼다고 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분자가 되어 대기를 떠돌다 우리 폐로 다시 들어온다. 땅 속 깊이 다져지고 다져져 평당 3천만원짜리 아파트를 떠받치는 받침대가 되기도 할 거다. 트럭에 실려지고 쓰레기 봉투에 담으며 이별한 물건들은 다시 내 몸 속으로, 내 삶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주위에서 영원히 떠돌 것이다. 우리가 죽어도 그들은 계속 존재하며 세상의 바탕이 될 것이다.


돌, 나무, 흙과 같은 자연물은 왠만하면 버리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처분할 권리가 있지만, 자연이 만든 것은 인간이 처분한 권리가 없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연물은 세월이 흘러도 쓰임새가 여전하다. 오히려 가치가 높아지기도 한다. 인공물과 자연물을 구분하는 것은 편견 같다. 미세 플라스틱이나 텃밭 로즈마리나 똑같다. 모두 내 몸 속에 들어와 나를 만든다. 리모델링을 하다가 자주 생각에 잠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선택, 나의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미란 도대체 무엇인가?


끝없이 사고 끝없이 버리는 삶. 쓰레기 위에 세워진 문명. 쓰레기를 발명한 인간.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딱정벌레나 멧돼지가 훨씬 의미 있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의미에 매몰되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쓰레기를 만들어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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