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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책

by 피라

어린이를 위한 정책을 반대한다. 어린이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심장에 좋은 약을 찾아 먹어야 하고, 눈에 좋은 약, 피부가 깨끗해지게 특별 관리를 받아야 하고,

살빠지는 약을 먹어야 하고, 고지혈증 관리를 해야 하고, 간수치를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건, 그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뜻이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 좋지 않은 사회는 어린이들의 삶에 문제가 있다. 청년들의 삶에 문제가 있다. 여성들의 삶에 문제가 있다. 노인들의 삶에 문제가 있다.

그뿐 아니다. 중장년의 삶에 문제가 있다. 몸에 문제가 있을 때는 좋은 음식을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충분한 수면, 그리고 스트레스를 줄여 건강한 삶을 되찾아야 한다.

건강이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문제다. 사회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문제다.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부분의 문제만 미봉책으로 해결하려 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10대를 위한 정책, 20대를 위한 정책, 30대를 위한 정책, 40대를 위한 정책, 고졸을 위한 정책, 대졸을 위한 정책, 대학원졸업생을 위한 정책,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을 위한 정책, 월수입 100~200만원 사이를 버는 사람을 위한 정책, 월수입 300~400만원 사이를 버는 사람을 위한 정책, 600~700만원을 버는 사람을 위한 정책, 월 1천만원~2천원만을 버는 사람을 위한 정책. 정책의 대상이 세분화되고 구체화된다는 것은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갈등의 원천이다. 정책, 제도, 기준은 점점 복잡해진다. 건강을 위해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수십종, 수백종으로 늘어난다.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약을 복용을 관리해주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그런 일자리를 정책적 성과라며 자화자찬하는 정부는 곧 몰락한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지고 있는데, 닭가슴살만 먹으며 이두박근 운동만 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이다. 한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다. 물론 전체를 좋게 만들려면 부분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단 부분은 전체와 연결되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좋은 정책은 어린이에게만 좋은 정책이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좋고, 노인에게도 좋고, 청년들에게도 좋은 정책이다. 청년들에게 쓰여야 할 돈을 빼서 어린이에게 쓰는 것, 어린이에게 쓰여야 할 돈을 노인들에게 쓰는 것은 카드돌려막기다. 곧 파산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한 정책, 여성들만을 위한 정책, 각기 따로 노는 정책들이 성공해서 사회의 다른 영역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예를 들어보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면 중학생을 위한 자리, 고등학생을 위한 자리, 임산부를 위한 자리, 여성을 위한 자리, 30대 청년인데 직업이 있는 사람을 위한 자리, 직업이 없는 사람을 위한 자리, 자녀가 없는 사람을 위한 자리, 자녀가 3명 있는 사람을 위한 자리, 성적이 상위 3%에 드는 학생을 위한 자리, 하위 20%를 위한 자리 등이 개별 맞춤형으로 정해져 있다면. 우리들의 출근길을 어떻게 변할까? 지하철 풍경은 어떻게 변할까? 무엇보다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외국인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면,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을 위한 정책, 영국인을 위한 정책, 미국인을 위한 정책, 베트남인을 위한 정책, 캄보디아인을 위한 정책, 일본인을 위한 정책, 중국인을 위한 정책, 네팔인을 위한 정책…. 등으로 세분화한다면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내국인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또 그렇게 세분화하는 것을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함정에 빠진 것 아닐까?

모두를 독자로 생각하면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함정 깊숙히 빠진 것 아닐까?

누군가의 좋아요를 얻기 위한 마음의 파도가 인간의 땅을 점점 침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삶이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것 아닐까?

레고블럭으로 다 끼워 맞춰 뭐가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블럭 하나하나씩 잡았다 놓았다 하는 기어다니는 아이처럼 살고 있는 것 아닐까?

경계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부분의 함정에 빠져 전체를 생각하지 못함과

전체의 함정에 빠져 부분을 생각하지 못함.

부분을 전부라 여기는 착각보다는

전체를 부분이라 여기는 착각이 나을 수 있겠다.

아직 미지의 세계가 있으니.

흔들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탐험정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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