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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 때문에

by 피라

100원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3년 전에 공영 주차장이 생겼다. 본가 근처다. 집 앞에는 차를 정차할 공간이 없어. 주차장에 잠시 차를 대고 물건을 가지러 가곤 했다. 5분인가? 잠시까지는 요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이곳은 등산객이 많이 오는 곳이다. 또한 초행 여행자들도 차로 많이 찾는 곳이다. 길을 잘못 들면 차를 돌릴 곳이 전혀 없어서 나처럼 주차장을 이용해 차를 돌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지난주에 주차장을 이용해 차를 유턴했다. 10초도 안 된 시간에 차를 돌렸는데 요금 100원이 부과되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일단 결제를 했다. 시스템 에러라 생각해 관리주체인 구청에 전화를 했다. 구청 교통과 직원의 첫 대답은, “수탁업체에 직접 문의하세요!”였다. 일단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했다. 담당자의 대답은, “최근에 수탁업체가 변경되었고, 요금변경 등은 구청에서 관여할 수 없다”였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러 질문들의 핵심은 이렇다.


- 구청에서 수탁받은 공영주차장 운영자가 구청과 협의 없이 과금체계를 자신 마음대로 변경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주차장 관리 책임은 구청에 있다. 상식이다. 그런데 구청은 자신은 관리주체도 아니고, 책임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것은 수탁업체에서 알아서 하니 업체에 문의해라는 말의 의미다. 이해하기 힘들다. 공영 주차장의 과금체계가 바뀌었다는 것은 구청과의 협의, 구청의 묵인 혹은 결정 과정이 있었을 거라는 것이 상식이다. 최소한, 변경된 과금체계를 구청에 통보는 이루어져야 상식이다. 수탁업체에 자율권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부여된 자율권의 합리적인 목적과 이유가 명시된 문서 정도는 있어야 한다. 수탁계약서에 들어갈 내용이다. 과금체계 변경의 근거가 뭐냐고 물으니 그런 건 없단다. 수탁업체에 알아봐란다. 지차체의 존재 목적, 크고 작은 지자체 행정의 목적과 이유는 공공성에 기반한다. 과금체계를 바꾸는 것이 공공성에 도움이 되는가? 수탁업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가 부딪히면 구청이 나서서 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지자체 일의 본질이다. 내가 볼때 구청은 자신 조직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있다. 이것이 화가 난 이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예전처럼 회차요금을 받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회차시에도 100원이 부과되어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알고 싶다. 그것뿐이다. 그게 알고 싶은 그들의 ‘근거’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으면 하나 배우고 가면 된다. 구청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구청의 일이 아니라고만 한다.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수탁을 줘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누가 지나? 몇 통의 전화를 했다. 똑같은 말이 돌고 돈다. 수탁업체에 문의해라는 말만 반복한다. 자신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부정하는 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을 하지만, 방기다. 방기는 독재의 다른 얼굴이다. 구청의 말대로 수탁업체에 문의해 보았다. 적자가 나서 회차시에도 요금 100원을 과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억에)일년에 1천만원 가까이 적자가 난다고 했다. 하루에 회차가 10건 있다고 하면 하루 수입 천원, 일년이면 30만원 남짓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하루에 회차가 100건 일어나면 300만원 정도 된다. 적자해소에 조금 도움이 되긴 하겠다. 하루 100명 넘는 시민들이 회차를 하는 곳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하루 100명 이상의 외지인,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불괘한 경험을 한다는 뜻이다. 지자체나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주차장 회차요금 100원 문제의 중심에는 지자체가 있다. 문제를 인지하고 지자체 존재 목적에 맞게 문제를 잘 풀어가야 할 주체가 그 역할을 하지 않으려는 오래된 습관이 느껴져 화가 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고작 100원 가지고 화내지 말라고. 난 생각이 다르다. 꼴랑 100원이니까 화를 내지 않으면 얼마쯤 되면 화를 내어야 하나? 1만원? 10만원? 100만원? 1천만원? 1억? 10억? 100억?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왜 돈이 기준이 되어야 하나? 큰 돈이 걸려 있으면 관심을 가지고 화를 내고, 작은 돈이 걸려 있으면 무관심으로 넘어가는 태도. 이런 태도가 점점 상식이 되어가는 세상에 또 화가 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큰 일을 할 때는 작은 문제는 무시한다. 사업 성과를 위해서라면 직장내 성폭력 정도는 쉬쉬하면서 넘어간다. 국가가 하는 중요한 일에 힘없는 사람 몇 명쯤 죽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긴다. 큰 가치와 작은 가치를 따지는 것은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도움이 되지만, 더 큰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작은 가치가 하찮고 무시해도 되어서가 아니라 큰 가치를 통해 바탕을 이루는 작은 가치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강력한 국가의 존재 이유는 그 국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위해서다. 작은 부분, 사소함, 바탕을 무시하고 큰 것, 멋진 것, 특별한 거에만 치중하는 태도는 당장은 근사해 보일지 몰라도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야기가 많이 나갔다. 위탁이든 아웃소싱이든 외주 프로젝트든 남에게 일을 부탁한다는 것은 그 일이 원래는 나의 일이라는 뜻이다. 위탁을 주었으니 그게 나의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가지면 위탁이나 수탁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그렇게 일하려면 주차장을 아무에게나 팔아버리면 될 일이다. 지구 저편 손톱만한 독재국가나 무정부상태 지역에서 일어난 지구촌 한 줄 뉴스라면 이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다. 100원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쌓이고 쌓여 상식이 되면 세상은 모래성이 된다. 위탁 주었으니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공무원의 생각, 합리적 목적과 이유 없이 행해지는 수많은 의사결정과 행동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태도. 바로 그런 생각과 태도 때문에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세상이 무너진다. 전조다. 찬란한 제국도 인간의 삶도 같은 운명이다. 전화로는 안 되겠다. 수탁업체와 구청은 계속 거짓말을 한다. 1분 안에 회차는 과금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제 또 테스트했다. 회차하는데 16초 걸렸고, 또 100원을 결제했다. 100원 요금을 낼 때마다 분노의 네트워크는 100배 커진다. 구청에 가야겠다. 이 문제에 대한 관리 책임이 없다는 것이 구청의 공식 입장인지 부서장 혹은 구청장에게 물어야겠다.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수렁 같아도 양생되면 우리가 살아갈 곳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기반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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